[기업]대기업 임원들 "CEO로 가자"

  • 입력 2001년 11월 8일 18시 40분



대기업 임원들이 경쟁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벤처붐이 수그러들면서 30대 사장의 ‘신화’가 잠잠해진 자리를 중량감 있는 대기업출신 40대 및 50대 임원들이 메우고 있는 것.

이들의 ‘CEO 행(行)’은 대기업의 우수한 인적자원이 폭넓게 배분된다는 긍정적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해당 기업은 회사 이미지 하락이나 기술력 누출을 꺼려해 임원들을 경쟁기업에 내놓고 싶어하지 않아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한국의 간판기업’중 하나인 삼성전자의 이명우(李明祐·48) 가전부문 북미총괄 책임 상무보는 얼마전 소니코리아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한 뒤 78년 삼성전자에 들어와 국제본부 마케팅 팀장 등을 거쳤다.

장병석(張炳錫) 소니코리아 회장은 “한동안 공석이던 사장 자리를 놓고 고민을 했는데 이사장의 국제감각과 마케팅 경력을 높이 샀다”며 “이 사장을 영입하기 전에 삼성전자와 논란도 있었지만 윤종용(尹鍾龍) 삼성전자 부회장이 한국의 전자산업을 대승적으로 발전시키자는 차원에서 동의했다”고 말했다.

8월에는 삼성전자의 한 임원이 휴대전화 단말기를 생산해 모토롤라에 납품하는 한 중견 벤처업체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삼성전자에 연구전무로 일하면서 애니콜을 개발해 모토롤라 등이 장악해오던 한국의 휴대전화 시장을 국산으로 대체시켰고 해외시장도 석권한 ‘애니콜 신화’의 주역이었다.

그는 지난해 5월 회사를 옮기기 위해 사표를 냈으나 삼성전자에서 ‘부당 스카우트’로 제소했고 결국 2개월만에 삼성전자로 다시 돌아왔다. 이 임원은 “1년뒤 거취는 간섭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삼성전자에 복귀해 회사 지원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으며 최근 귀국한 뒤 이 중견 벤처업체 사장으로 갔다. 다만 ‘이적(移籍)’을 둘러싼 삼성전자와의 미묘한 갈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SK텔레콤에서 ‘넷츠고’ 사업을 초기부터 시작해 대표적 포털 사이트로 성장시킨 주역이었던 김정국 상무는 올해 3월 코스닥 등록회사인 리타워텍으로 옮겼다.

또 SK㈜ 출신으로 선경 마그네틱 전무, 동산C&C 대표이사 부사장을 지냈던 김년태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교보문고로 옮겨 CEO의 길을 걷고 있다.

LG출신도 적지 않다. 이태화 LG건설 상무보는 건설직종의 노하우를 살려 교량 및 도로시설물 제조업체인 유니슨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99년 자리를 옮겼다. 유완영 LG전자 전무도 LG전자 통신사업 기획단, LG그룹 전략사업개발단 전무를 거쳐 99년 통신장비 회사인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 사장으로 영입됐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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