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사기피해 임원연루 의혹…창구직원 “직간접적 보증 종용”

  • 입력 2001년 10월 21일 18시 53분


신용보증기금의 99년 융통어음 전문사기단 피해사건은 한해 수조원대에 이르는 보증사업 규모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사기단이 정부 출연기관의 허술한 보증체계의 틈새를 조직적으로 노렸다는 점에서 외환위기 이후 급증해온 정부 보증사업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고위임원의 압력행사 의혹〓신보 내에서는 자체감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은 채 검찰에 수사 의뢰되는 과정에서 조사대상이 축소됐다는 의혹이 무성하다. 감사과정에서 창구직원들 입에서 “고위임원이 직간접적으로 이들 업체에 대한 보증을 해줄 것을 종용했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감사가 장벽을 만났다는 것.

감사실은 올해 6월 초 ‘감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감사대상인 고위임원의 일시적 업무정지 조치가 필요하다’고 이사장에게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신보의 한 관계자가 밝혔다. 당시 감사를 맡았던 김모씨는 “추가조사 필요성을 느껴 검찰에 사건을 넘긴 것”이라면서도 “고위임원 건에 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입을 다문 상태. 이종성 이사장은 21일 뒤늦게 고위임원 연루설을 조사하고 있다고 시인하면서 “고위임원의 경우 검찰 수사요청에 신중할 수밖에 없어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고위임원은 지난번 한빛은행 관악지점 불법대출사건 때도 이운영 신보 영동지점장에게 “(정권 실세의 친척이 운영하는) 아크월드를 도와주라”고 98년 9월과 99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전화한 것으로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기단, 수산물도매업에 대한 허술한 보증심사를 노려〓이번 사건은 지난해 하반기 신보가 자체적으로 시도한 사이버 감사에서 첫 단서가 잡혔다. 부도사건에 따른 신보의 피해가 이상하리만큼 수산물 도매업체에 집중됐던 것.

감사실 관계자는 “개별 지점의 피해를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하다 보니 수산물 도매업체들간에 서로 융통어음을 남발, 이를 진성어음인 것처럼 위장한 뒤 신보의 보증을 받은 사실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보증을 받아 어음을 현금화한 뒤에는 어음발행자가 부도를 내고 잠적하는 수법으로 신보의 돈을 우려낸 것.

이후 대출보증이나 어음보험에 나섰던 피해지점 영업직원들에 대한 경위조사가 연초 강도 높게 실시됐고 그 과정에서 S주식회사 등 핵심 7, 8개 업체간 복잡한 어음발행과 신보의 보증과정의 전모가 파악됐다. 이들은 △정부의 생계형 창업지원대책 독려로 신보의 까다로운 보증심사를 피해갈 여지가 커진 데다 △어음보증은 실제 거래가 일어난 진성어음에 적용되지만 농수산물 유통업의 경우 부가세가 면제되기 때문에 거래를 입증할 세금계산서를 첨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공직기강확립 차원의 감사원 특별 감찰도 이때쯤 동시에 진행됐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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