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공정법 무리한 적용' 잇따라 반발

  • 입력 2001년 6월 24일 18시 45분


관할 정부부처의 행정지도를 충실하게 따랐던 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행위를 했다’며 과징금을 얻어맞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정위는 “행정지도라도 법에 없는 것이라면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해당업체는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관할부처 명령을 어떻게 무시하느냐”면서 부처간의 칼자루 싸움에 업계만 애꿎게 피해를 본다며 법정을 찾고 있다.

▽11개 손보사와 맥주 3사 사례〓“금융감독원이 보험료를 4% 이상 올리지 말라고 행정지도까지 했는데 공정위는 업체들이 담합했다고 엄청난 과징금을 물리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한 손보사 업무부장)

5월30일 공정위가 11개 손보사에 대해 부당공동행위를 했다며 51억원의 과징금을 매기자 보험사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금감원이 보험료를 3.8%까지만 올릴 수 있다고 창구지도한 바람에 더 이상 인상할 수 있었는데도 덜 올렸다는 것. 이 때문에 손해를 본 것도 억울한데 공정위 과징금까지 맞게 된 것. 이들은 공정위 판결에 이의신청 등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99년 5월 공정위가 매긴 OB맥주 하이트맥주 진로쿠어스 등 맥주 3사에 대한 11억4600만원에 대해서는 서울고법에서 과징금 취소판정이 나왔다. 이 사건은 맥주업체들이 “재경원과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라 맥주사들이 인상률을 오히려 낮췄다”며 반발, 서울고법에 행정소송을 내 맥주사들이 이긴 것이다. 서울고법 특별7부는 “1998년 2월에 이뤄진 하이트 OB 진로쿠어스 등 맥주 3사의 가격인상에 담합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하고 과징금 전액을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맥주 3사의 가격인상 요구안이 크게 차이가 나고 재경원과 국세청의 행정지도를 통해 요구안보다 낮은 수준에서 인상률이 ‘사실상 강제’된 점에 비춰 부당한 공동행위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후 소송은 재판부의 결정에 불복한 공정위가 낸 상고가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공정위 경쟁정책, 정부 행정지도와 어긋나〓비슷한 사례는 더 있다. 99년 6월 농약제조 12개사가 농약 출고가격을 사전에 농협에 알린 것은 부당공동행위라고 판정했다. 이는 당시 농림부가 농약가격을 똑같이 정하라고 행정지도한 데 따른 것. 이외에도 90년 상공부가 구리제품 내수물량을 제한하도록 행정지도한 것을 공정위가 부당공동행위로 판정한 것이라든가 국민카드 등 5개 신용카드사가 수수료를 조정한 것도 당시 재무부의 행정지도 결과였으나 부당공동행위로 철퇴를 맞았다.

문제는 부처끼리 서로 다른 판정을 내려놓고 애꿎게 관할부처 행정지도를 따른 업체들에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조학국(趙學國) 공정위 사무처장은 “공정위가 행정부처에 대해서는 징계권이 없으므로 처벌할 수 없다”며 “그러나 업계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힘없는 업계에만 ‘쇠방망이’ 논란〓공정위 입장대로라면 충돌을 빚은 행정부처간에도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정위는 이런 사례가 자주 나오자 99년 8월 정부부처에 ‘행정지도가 개입된 공동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기본입장’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행정기관이 법령에 근거 없이 행정지도를 하고 사업자들이 이를 빌미로 담합을 할 경우 ‘엄격하게’ 시정조치하겠다는 것이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통상 행정지도는 물가안정이라든가 자금시장 안정 등 거시경제정책을 위해 불가피하게 개입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공정위가 법 적용을 엄하게 하기에 앞서 부처간 정책충돌을 막기 위해 교통정리를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해·박중현기자>moneycho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