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정부 획일적 규제에 투자 수출 하고싶어도 못해

  • 입력 2001년 5월 2일 18시 34분


정부의 무리한 규제가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수출을 가로막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일 재계에 따르면 특히 △출자총액제한의 부활 △부채비율 200%의 획일적 적용 △동일계열 신용공여한도 △해외법인에 대한 본사의 지급보증 제한 등의 폐단이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부는 투자와 수출을 많이 하라고 독려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정”이라며 “축소지향적 경영을 부추기는 원인부터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이학수(李鶴洙) 사장은 최근 올 1분기 실적을 설명하면서 “기업들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투자를 해둬야 나중에 경기가 좋아지면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다는 점을 잘 안다”면서 “하지만 상황이 워낙 불투명하다 보니 섣불리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재계의 투자위축 분위기를 전했다.

▽수출발목 잡는다〓한 종합상사는 올해 초 인도네시아에 1700만달러 규모의 자동차 수출을 추진했다가 성사 직전에 이 물량을 일본업체에 빼앗겼다. 당시 국내 은행들이 “신용공여한도제를 지켜야 한다”며 수출환어음(DA) 매입을 거절했기 때문.

동일계열 신용공여한도제란 금융기관이 특정 그룹에 빌려준 돈이 자기자본의 25%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 제도. 일반 대출은 물론 수출입관련 지급보증 등 무역금융까지 포함돼 있어 한국업체의 수출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수출비중이 큰 4대그룹은 차입금을 모두 갚아도 수출입에 필요한 신용장 개설이나 수출환어음 매입조차 어려운 실정. 한빛 국민 신한 등 3개은행의 한도를 모두 합쳐도 삼성그룹 계열사의 DA물량조차 소화하지 못한다.

해외 현지법인에 대해 본사가 지급보증해주는 한도를 묶어놓은 것도 재계가 꼽는 수출발목잡기 정책의 한 사례.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해외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98년말 기준으로 묶었지만 이 때문에 현지 법인의 영업력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투자포기 속출〓출자총액제한제의 부활과 부채비율 200%의 획일적 적용으로 기업들이 수익성 있는 차세대 사업을 발견해도 포기하거나 자금조달 방안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두산은 옛 한국중공업을 인수하면서 1000억원 가량 출자총액 한도를 초과해 앞으로 외국기업과의 합작을 못하게 됐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LG텔레콤은 IMT―2000에 1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대주주인 LG전자는 이미 3000억원 가량 출자총액 한도를 초과해 계열사 지분을 추가로 매각하지 않으면 추가 출자가 어려운 상황이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재벌의 방만한 경영을 견제할 장치는 필요하겠지만 투자와 수출이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끄는 양 축임을 감안할 때 융통성 있는 적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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