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왜 거시지표 수정 서두나]경제 짙어진 먹구름

  • 입력 2001년 4월 8일 18시 40분


경제기상도에 먹구름이 끼자 정부가 ‘우산’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다.

7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경제지표 목표치 수정을 포함한 종합대책을 6월중 새로 마련키로 한 것은 그 첫걸음으로 풀이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최근 세계경제 여건이 유리하지만은 않으며 국민도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긴장감이 풀린 점도 있다”며 ‘달라진 경제환경’을 강조했다.

▽불가피한 거시경제지표 수정〓미일(美日) 경기둔화 및 엔화가치 약세 등으로 최근 세계경제 전반에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당초 전망치 4%대에서 3%대로, 세계교역량 증가율은 7∼8%에서 6%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경제도 일부 기업경기 실사지수(BSI) 등은 좋아졌지만 실물부문에서는 수출감소, 물가 및 실업률 상승 등이 골칫거리이고 금융부문에서는 주가 및 원화가치 하락(원화환율은 상승) 등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부가 당초 세웠던 △5∼6%대의 경제성장률 △3%대의 물가상승과 실업률 목표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일 경제가 빨리 살아나지 않는 한 이런 목표치를 손질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연간 경제성장률의 경우 4%대로 낮아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 골드만삭스 등 일부 해외 금융기관들은 3%대로까지 전망하고 있다.

올해 소비자물가를 3%대에서 묶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엔화약세에 따른 원화약세와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 등을 감안하면 5% 안팎까지 갈 가능성도 많다. 물가관리를 위해서는 원화약세를 막아야 하지만 수출 등을 감안하면 환율을 무작정 묶기도 어렵다.

실업도 이미 비상이 걸렸다. 실업자수는 2월에 100만명을 넘어섰으며 실업률도 5%대로 올라섰다. 앞으로 이보다는 다소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올해 실업률은 4%대 중반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예상되는 정부의 대응방향〓정부는 상반기중에는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지 않고 버티며 구조조정이 잘 이뤄지는지를 살필 방침이다. 즉 정크본드시장 육성과 부동산구조조정회사 설립 등을 마무리한다. 또 외환시장 안정을 유도하고 연기금의 증시투입 확대 및 장기주식보유자에 대한 세제지원 등을 통해 증시수요기반을 넓힌다.

그러나 미일 경제침체가 길어지고 국내 악영향이 커질 경우 경기부양에 나설지 여부를 따지게 된다. 성장이 지나치게 움츠러들면 하반기에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지출확대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장관 간담회 이모저모〓경제장관들의 보고와 김대통령의 지시 외에 참석자간 분야별 토론이 눈길을 끌었다.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는 “중국은 미일 경기침체에 따른 영향이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고 물었고 이에 대해 진념 부총리는 “중국은 수출산업구조가 한국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경기 살아난다" "아니다" 해석 엇갈려▼

경제현장 일부에서는 경기가 풀리는 기미가 엿보여 우리 경제의 ‘체온’이 몇도인지 정확하게 확인하는 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기업의 체감경기는 두달 연속 좋아졌고 ‘실물경기의 선행지수’로 불리는 소형 승용차의 판매도 크게 늘었다. 산업활동의 기반이 되는 산업용 전력 수요도 2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미국 일본 경제의 위축과 환율 급등, 현대사태 등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쌓여 있는 만큼 경기가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들어섰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실물경기 호조는 바닥에서 약간 반등한 것일 뿐 외부요인에 의해 쉽사리 다시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 체감경기 호전〓전경련은 8일 업종별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 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4월 BSI(전월 기준 100)가 107.7을 나타내 3월(102.4)에 이어 두 달 연속 100을 넘었다고 밝혔다. BSI가 100 이상이면 경기 낙관론자가 비관론자보다 더 많다는 뜻.

올 1월에 62.7까지 떨어졌던 BSI는 2월(83)부터 매월 가파르게 올라 기업인들의 투자심리가 기지개를 켜고 있음을 보여줬다. 전경련은 “음료 시멘트 의류 등 상당수 업종들이 계절적 비수기에서 벗어난 데다 자금사정에도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산업별로는 음식료업(115.1) 가죽신발(116.7) 섬유의복(122.7) 시멘트(133.3) 조선(120) 자동차(120.6) 등의 호조가 두드러졌으며 정유(60) 철강(84.4) 등 일부 업종만 부진했다.

▽소형차 판매, 전력소비도 늘어〓지난달 베르나(현대) 리오(기아) 라노스(대우) 등 배기량 1500㏄급 승용차의 판매는 평균 20% 가량 늘었다.

2월에 3627대가 팔렸던 베르나는 3월에 4440대로 22.4% 늘었고 리오 판매량은 1197대에서 1417대로 18.3%, 라노스는 1089대에서 1345대로 23.5% 증가했다.

대우차 관계자는 “소형차가 잘 팔리는 것은 소비자들이 앞으로 2∼3개월 뒤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며 “미국에서도 경기선행지수를 파악하는데 소형차 판매동향을 크게 참고한다”고 말했다.

산업용 전력수요도 올 1월에 바닥을 친 뒤 2월을 고비로 다시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6.2%였던 산업용 전력수요 증가율은 올 1월 ―1.8%까지 떨어졌다가 회복되고 있으며 3개월 뒤의 전력수요를 나타내는 계약 전력량도 증가추세다.

▽경기상승 낙관은 시기상조〓대부분 전문가들은 실물경기가 작년말∼올해초의 극심한 불황에서 벗어난 듯하지만 경기상승이라 단정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거시경제실장은 “BSI가 좋게 나온 것은 수요 확대에 따른 매출증가를 반영해서가 아니라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 정부의 대책 덕택에 자금난이 다소나마 풀린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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