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마다 회사편" 기관은 들러리?

  • 입력 2001년 3월 22일 18시 58분


소액주주의 권익보호를 위해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인 의결권행사를 약속했던 기관투자자들의 약속이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주총시즌을 맞아 한국 대한 현대 등 3대 투신사를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천편일률적으로 회사측 손을 들어주고 있어 경영감시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외환위기(IMF) 이후 소액주주의 주주권 행사만으로는 외부감시 기능이 미약하다고 보고 경영투명성 확보를 위해 기관투자가의 의결권행사를 부활시켰으나 사실상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기관은 거수기인가?〓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삼성전자 주총에서 대형 3투신사는 물론 LG 한빛 조흥 신영 등 거의 모든 기관투자자가 삼성전자가 추천한 이학수 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찬성했다. 국민연금 사학연금 교원공제회 등 대형 연기금들이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준 것과는 정반대다. 참여연대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 기관들마다 보는 견해가 다른데 똑같이 회사편을 들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14일 현재 기관투자자의 의결권행사 공시는 314건으로 작년(133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반대의사 공시를 낸 곳은 현대투신운용 단 한곳에 불과했다. 현대투신의 백승삼 부본부장은 “LG화학이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구자정 하나증권 회장이 과거 LG에 근무했던 인물이어서 사외이사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반대했다”며 “과거처럼 무조건 회사측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밀실거래 이뤄지나〓한 펀드매니저는 이렇게 전했다.

“주총에서 핫이슈가 걸려있는 기업은 기관투자자에게 채권형펀드에 돈을 맡기는 대가로 찬성표를 요구하거나 반대하면 돈을 빼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회사입장에서는 중요한 고객이기 때문에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기업은 이번 주총에서 전 임원이 총동원돼 기관투자자 설득에 나섰다” 이같은 집요한 설득 앞에 기관투자자가 버티기는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증권전문가들은 “기관투자자는 고객이 맡긴 돈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액주주 이익에 맞도록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며 “이와 어긋나는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의결권을 포기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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