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련보고서 분석]반도체 장비 자급률 13%

  • 입력 2001년 2월 11일 18시 29분


‘외화내빈(外華內貧).’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실태를 최근 정부에 종합 보고한 한국경제연구원은 이 한마디로 보고 내용을 압축했다.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기계 등 주력 업종만큼은 ‘그래도 괜찮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세계 시장에서 받는 평판은 ‘전혀 아니올시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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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확인된 한국 제품의 세계 시장 순위는 70∼80년대 한국 경제가 일궈낸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의 신화가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를 주관한 박승록 연구위원은 “받아들이기 싫어도 현실은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첨단기술력 상품 극소수▼

▽참담한 현실, 심각하다〓수출 현장을 누비는 종합상사 임직원들은 평소 애로 사항으로 △선진국과 후발 개도국 사이에서 협공 당하고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점을 꼽았다. 이같은 고민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거의 모든 제조업체에 업종 구분없이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은 경쟁국인 중국 대만에 비해 1위 제품은 물론 5위권안에 드는 제품 수에서도 크게 뒤졌다. 5위이내 제품으로 한국이 411개를 보유한 반면 중국은 두 배가 넘는 1047개에 달한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는 섬유 직물 관련 품목과 D램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피아노, 낚싯대 등. 그러나 이중 첨단 기술력이 필요한 상품은 극소수다.

특히 한국 수출의 15∼20%를 책임지는 반도체조차 핵심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반도체 재료와 장비의 자급률이 각각 55%와 13%에 불과해 D램 반도체를 팔아 벌어들인 돈과 비슷한 액수를 부품 수입에 쓰는 실정. 주문형 반도체 등 고부가제품인 비메모리 분야는 아예 국제 경쟁 대상에 끼지도 못한다.

1년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조선도 사정은 마찬가지. 탱커 등 범용선이 대부분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특수선의 비중은 일본의 절반에 불과하다. 단가가 비싼 순항선 유람선 카누 등의 경쟁력은 20위권으로 웬만한 조선국 중 최하위권이다.

▽최근 들어 더욱 확산, 정부도 한몫〓한국이 반도체 분야 순위에서 계속 처지고 있는 것은 ‘대표 선수’가 적다는 점. 한국의 반도체 업체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 두 곳이지만 일본은 NEC 도시바 후지쓰 소니 히타치 샤프 등이 뛰고 있다. 미국은 인텔과 AMD가 세계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90%이상을 장악하는 것을 비롯해 마이크론테크놀로지 IBM 등이 활발하게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산업 정책의 탓이 크다.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담당 정헌화 상무는 “국제 무대에서 삼성 LG 현대 대우 등 4개 업체가 참여해 수적인 면에서 뒤지지 않았는데 요즘은 삼성 LG만이 세계 전자시장에서 외롭게 싸우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후속모델 없어 잊혀져▼

▽자초한 싸구려 이미지, 회복길 막막〓현대자동차는 86년부터 88년까지 미국 시장에서 ‘엑셀’ 돌풍을 일으키며 해마다 20만대 이상을 팔았다. 그러나 현대는 엑셀의 품질을 높이지 못했고, 애프터서비스에 소홀했으며 5년동안 후속 신차 모델을 내놓는데도 실패했다. “엑셀은 잔고장이 많다”는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한국 차는 ‘싸구려’ 이미지와 함께 기억에서 잊혀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상표 이름을 가리고 품질 테스트를 하면 한국차에 대해 80∼90%가 괜찮다고 하는데 브랜드를 알고 테스트하면 그 비율이 30%대로 떨어진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자동차 업계의 무기는 배기량 1000∼1500㏄급 소형차 시장의 우위. 소형차 판매로 돈을 벌어 중대형 승용차와 전기차 등 무공해차의 모델 개발에 나서야 하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 독자 개발은 무리라는 게 업계의 고민이다.

▼R&D투자 못해 질 저하▼

▽할말은 있다, 기업들 항변〓기업들은 “선진국 시장에서 통하는 제품을 만들려면 연구 개발(R&D)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점을 절감한다”면서도 “자금 여력이 부족한데다 기초 핵심 부품에 대한 기술 축적도가 낮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부채비율 200%를 맞추는데 신경 쓰다 보니 R&D에 투자하고 싶어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신기술 개발 경쟁의 낙오가 제품 품질의 저하로 이어져 세계 시장 경쟁에서 밀려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박원재·하임숙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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