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2000 새희망2001]한화그룹 재무담당부장 "연초만 해도…"

  • 입력 2000년 12월 22일 18시 30분


한화그룹 재무회계 담당 여승주(呂昇柱·40) 부장은 2000년 1월 1일 아침을 서울 프라자호텔 객실에서 맞았다. 평소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생인 두 딸에게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고 강조해왔지만 큰맘먹고 호사를 부렸다. 대학 1학년때 미팅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인, 그리고 아내를 쏙 빼닮은 두 딸과 함께.

밀레니엄이 바뀌던 순간, 가족들은 나란히 손잡고 호텔앞 서울시청 광장으로 나갔다. 밤 하늘에 연달아 터지는 불꽃놀이 장관을 보고 환호하면서 새해 소망을 빌었다. 여부장이 정한 2000년 슬로건은 가족과 함께, 회사와 함께 .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희망에 부풀었지요. 경기가 다시 좋아졌고, 그 덕택에 IMF 위기로 깎였던 봉급이 대부분 원상 회복됐으니까요.

4월 1일 부장으로 승진했다. 85년에 입사했으니까 15년만의 경사. 더욱 신바람이 났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기업들의 자금 사정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중견 기업들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자금은 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그럭저럭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여부장이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은 6월경. 현대그룹 사태로 금융시장이 출렁거리자 금융기관들이 돈줄을 조이기 시작했다. 거래은행의 기류도 예전같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뭔가 큰일이 나겠다 싶어 자금조달 상황과 각종 재무관련 자료를 꼼꼼하게 챙겼다.

한화는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강도높게 한 덕택에 자금형편이 좋은 편. 하지만 불과 2,3년전 호된 시련을 겪었던 경험이 생생한 터라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여부장이 보기에 사정이 좋지 않은 다른 기업의 자금 담당자들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큰탈없이 한해를 마감하게 돼 다행이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 이라고 말했다.

그는 며칠전 다른 부서의 친한 동료들과 송년회를 가졌다. 음식점에서 소주를 곁들인 1차 가 끝난 시각은 밤 9시반. 곧바로 헤어져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귀가하자 아내가 오히려 의아해했다. 작년 연말엔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젖어 흥청대기도 했지만 올해는 사회 분위기 탓인지 한결 차분해지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는군요

여부장은 내년에도 상반기까지는 경기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아 걱정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룹에서 몇몇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올해보다 훨씬 더 바빠지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창밖엔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여부장은 대학시절 신촌 거리에서 아내와 데이트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며 아무리 힘들어도 내년엔 가끔씩 낭만과 여유를 찾아볼 생각 이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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