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기업규제 완화"…한해 53차례 안전-환경점검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19분


석유화학업체인 A사는 작년 한해동안 모두 31차례의 안전점검을 받았다. 산업안전공단 직원들이 4차례 정례점검을 벌인 것을 비롯해 △가스안전공사 6회 △지역 소방서 7회 △지방자치단체 4회 △지역 소방본부 3회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이와는 별도로 환경점검을 22차례나 받았다.

검사일정이 잡히면 회사측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일부 공정의 가동을 중단하는 것은 물론 검사관련 인력을 섭섭지 않게 ‘접대’해야 한다. 검사가 1,2일 안에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열흘 이상 길어지기라도 하면 타격은 훨씬 커진다.

A사 관계자는 “업종 특성상 안전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기관마다 점검할 내용을 모아 한꺼번에 검사하면 효율이 높아질텐데 왜 매번 따로따로 검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현장에서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규제강도는 여전하다. 현 정권 초기 의욕적으로 추진한 규제개혁 드라이브가 최근 들어 주춤해지면서 공무원들의 업무 행태가 예전으로 되돌아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통계만 보면 규제완화 진전〓정부는 98년 국무총리 산하에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부처별로 각종 행정규제를 등록토록 의무화했다. 당시 1만1000여건의 규제 가운데 50%가 폐지됐고 20%가 개선됐다.

수치상으로는 큰 진전이지만 현장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650억원을 들여 지방산업단지를 조성한 B사는 총사업비의 19.5%인 127억원을 △문화재유적 발굴비 △대체농지 조성비 △오폐수처리장 설치비 등 준조세 관련 비용으로 지출했다. B사측은 “준조세가 공장용지 조성 비용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해 평당 13만원 하는 땅을 17만원을 주고 산 꼴이 됐다”고 씁쓸해했다.

9일 현재 정부가 공식 집계한 규제는 7109건. 한때 6000건 이하로 줄었던 규제가 경제환경의 변화 등을 이유로 슬그머니 늘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홍성일 선임조사역은 “상부의 의지가 일선기관으로 파급되는데 한계가 있는데다 워낙 뿌리깊은 관행이어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규제개혁 효과 있을까〓전경련과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들은 40여종의 규제개혁 과제와 해결방안을 담은 건의안을 이르면 10일경 정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경제단체들도 효과에 대해서는 미심쩍어하는 눈치. 전경련 관계자는 “규제개혁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시행 주체인 관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어떤 것이 잘못됐는지 몰라서 규제를 없애지 못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규제개혁은 진념 경제팀이 출범 이후 최우선 과제로 꼽은 현안. 불합리한 규제의 철폐를 촉구하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이번에도 ‘쇠귀에 경읽기’가 될지 재계는 정부측의 대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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