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추가조성 배경]금융개혁 '실탄'마련 비상책

  • 입력 2000년 8월 23일 18시 35분


새 경제팀이 공적자금을 추가 조성키로 결정한 것은 경제개혁의 핵심인 금융 구조조정을 6개월∼1년안에 마무리지으려면 대규모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현실 여건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또 다시 손을 벌리는 모양새가 좋지 않기는 하지만 ‘실탄’격인 공적자금이 바닥난 상태에서 정부가 금융개혁을 목청껏 외쳐봐야 금융권을 압박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면 대책도 없이 질질 끌 것이 아니라 국회 동의라는 정공법을 통해 추가로 조성하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새 경제팀의 의지를 강조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적자금 조성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64조원이라는 막대한 금액의 투입효과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줄잡아 20조∼30조원을 더 조성하는데 대해서는 정부내에서도 ‘염치가 없는 행동’이라는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적자금 추가조성과는 별도로 지금까지 사용한 금액의 내용과 효과를 정밀히 분석해 책임소재를 철저히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적자금의 수혜자가 금융기관이라는 점에서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금까지 모두 107조 들어▼

▽공적자금 어떻게 썼나〓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국회 동의를 받아 조성된 공적자금 64조원은 99년말까지 전액 사용됐다. 정부는 7월말 현재 이미 투입된 공적자금중 21조8000억원을 회수하고 이중 14조8000억원을 재사용해 모두 78조8000억원을 금융권에 지원했다.

28조3000억원 규모의 별도 자금을 금융기관의 건전성 제고를 위해 지원한 것까지 합하면 금융권에 투입된 돈은 무려 107조원대.

이처럼 정부의 한해 예산보다 10조원 가량 많은 돈이 금융 구조조정을 위해 투입됐지만 금융부실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상당수 대형은행들이 부실여신에 허덕이는 탓에 주가가 액면가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종금 등 제2금융권의 자금악화설이 자금시장을 짓누르는 실정이다. 국민 입장에서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이라는 탄식이 나올 법도 하게 됐다.

▽앞으로 얼마가 더 필요한가〓정부는 5월 앞으로 필요한 공적자금 규모를 올해 20조원, 내년 10조원 등 30조원으로 추정했다.

이미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해 사용하면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국민에게 손을 벌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같은 방침은 불과 3개월만에 전면 수정됐다. 공적자금 소요액 산정과 자금조달 계획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입증하는 대목. 당장 대우 담보 기업어음(CP) 매입에 3조2000억원, 대우 연계콜 처리에 따른 손실부담으로 6000억원 정도가 예상되고 있다. 종금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제2금융권의 추가 구조조정과 은행 증자 및 잠재부실 처리 등을 합하면 필요액은 훨씬 더 불어날 전망.

▼근거-내역 명확히 밝혀야▼

▽공적자금 책임 철저히 따져야〓정부의 방침선회는 금융권 여건을 감안할 때 일단 타당한 선택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 평가. 한 외국계 금융기관 관계자는 “공적자금이 바닥난 상황에서 있는 돈을 아껴쓴다는 식의 명분론에 집착해서는 시장을 설득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기왕 조성할 바에는 시기를 앞당기는 편이 기회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공적자금 추가조성은 ‘가용재원 범위내에서 쓰도록 노력한다’는 이헌재(李憲宰)전 경제팀의 기본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전임 경제팀의 경우 공적자금을 최초로 조성하는 단계에서부터 개입돼 추가조성이 확정될 경우 책임론에 휘말릴 여지가 큰 반면 새 경제팀은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인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진념(陳稔)장관도 취임이후 첫번째 금융관련 정책이 국민 부담을 늘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준일(金俊逸)연구위원은 “공적자금 추가 소요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평가를 기초로 자금사용 내용과 투입근거를 투명하게 제시함으로써 국민부담을 최소화하고 도덕적 해이를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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