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기 심상찮다…물가 들먹-수출 부진-수지 불안

  • 입력 2000년 8월 20일 18시 37분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이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에 밀려 장기간 표류하면서 한동안 가파르게 상승하던 실물 경기가 최근 들어 급격히 냉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저금리 정책에 힘입어 안정세를 보여온 물가가 다시 들먹이고 있고 수출 부진으로 내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 기조 유지가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주변 여건이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관련기사▼

[경제를 챙기자]기업 구조조정 비틀…금융불안 여전

기업 부실이 금융기관의 부실화로 이어져 금융시장에서는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아 한계기업들의 연쇄 부도설이 시장을 짓누르는 실정이다.

외국계 금융기관과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이 외환위기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극복했지만 현 정부 들어 추진해온 일련의 개혁이 조기에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한국의 국가신인도는 회복되기 힘들며 외국 투자자들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당면 문제로 경기의 급락 가능성과 경제의 불확실성 지속 및 경제 주체들의 불안 심리 확대 등을 꼽으면서 “특히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신용 경색 가능성과 실물 경제의 위축 등이 경기 하강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2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진념(陳稔)경제팀 출범 이후 첫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어 기업 금융 노동 공공 등 4대 부문 개혁의 추진 원칙과 일정을 다시 세우는 한편 ‘국민의 정부 2기 경제팀’의 정책 운영 방향을 확정한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25일로 김대통령 집권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기에 돌입하는 만큼 이번 회의에서는 개혁을 보다 강도 높게 추진할 방침임을 재천명하고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계 증권사인 모건스탠리 딘위터의 아시아경제담당 수석 애널리스트인 앤디 자이는 “한국 기업의 부채비율(결합재무제표 기준) 225%는 자체적으로 감당하기에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부채비율 200%를 맞추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르는 50조원의 자산을 매각해 실질적으로 부채를 줄여 나가야 하며 계열사간 유상증자 등까지를 고려하면 GDP의 30%에 이르는 150조원의 자산을 매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최근 은행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완결되기 전까지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외국계 투자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외형상으로는 부채비율을 낮췄지만 이는 부채를 갚아서 줄인 것이 아니라 계열사 유상증자 등을 통한 ‘눈 속임식 부채 감축’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정명창(鄭明昌)조사국장은 “기업과 금융구조조정을 떼어놓지 말고 동시에 추진해야 할 시기”라며 “정부가 하반기에 아무리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어정쩡한 상태에서 쓰러질 기업과 그렇지 않을 기업을 구분 없이 그대로 끌고 간다면 경제 체질 강화는 요원해진다”고 지적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차질로 금융 경색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으며 기업금융 중개 기능의 미비로 자칫 경제 전체의 위기 혹은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면서 “새 경제팀은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당면 현안을 조기에 완료하는데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안정적 성장 기반을 확보하려면 △저금리정책 지속과 경상수지 흑자 기조 유지 등 거시경제의 안정화 △경제정책의 일관성 유지 및 신뢰도 제고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의 동시 추진을 통한 선순환 구조의 구축 등을 꼽았다.

<박원재·이병기·박현진기자>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