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전 재경장관 "새 경제팀 '미세한 조율'신경써야"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45분


8일 밤 서울 영동세브란스 병원의 병실에서 만난 이헌재(李憲宰)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데 대해 담담하면서도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장관으로 재임할 때는 피로가 누적돼 오후만 되면 목 언저리가 붉어지곤 했는데 그런 증상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는 “맹장수술 덕택에 모자랐던 잠을 실컷 잤다”면서 “마음이 편해서인지 한결 건강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새 경제팀 진용에 대해서는 “무난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개혁의 완성이 시급한 시점에서 일을 더 벌리는 것보다는 기존 과제를 마무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이번 개각의 방향은 대체로 옳다고 덧붙였다.

그는 본인의 퇴진보다는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자신과 호흡을 맞춘 이용근(李容根)전 금감위원장의 경질을 안타까워했다. “이위원장이 한창 의욕을 갖고 현대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려 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이전장관은 현재의 경제상황에서는 강력한 추진력도 필요하지만 시장과의 긴밀한 교감을 통한 ‘미세한 조율(fine tuning)’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현대사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나온 언급이었지만 금융 전문가로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점을 염려한 발언으로 들렸다.

그는 금감위원장 시절에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잠시 명상에 잠기면 회복돼 견딜 만했는데 재경부 장관이 돼서는 훨씬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7월 중순경부터 개각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돌기에 마음을 비우니까 몸 상태가 다시 좋아지더라”는 말도 곁들였다.

기존 경제팀의 장관간 불화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현안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면서 견해차를 좁혀나가는 작업은 건설적인데도 이를 적대적 대립으로 봐서는 곤란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내부의 문제는 안에서 처리하면 되는데 이를 바깥으로 가져가는 게 문제”라는 말도 했다.

이전장관은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에 빠져든 이후 3년 가까이 금융 경제개혁을 진두지휘하면서 전력투구했다. 사상 초유의 은행퇴출 등을 주도해 원성도 많이 들었다. 대우사태를 수습한 데 이어 현대사태의 가닥을 잡아나가던 중 급성맹장염을 앓았고 끝내 경질됐다.

개혁을 앞장서 추진한 대가로 돌아온 것은 급성맹장염 수술이었다. 병실을 찾은 재경부 관계자들은 “맹장수술 자국이 훈장인 셈”이라며 ‘개혁 전도사’의 퇴장을 아쉬워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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