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파업 勞政협상 ]입장차만 확인…재회약속 성과

  • 입력 2000년 7월 7일 18시 58분


은행회관에서 열린 노정협상은 예상대로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할 정도로 ‘합의점 도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총파업을 앞두고 첫 공식 대화자리를 만들어 기대를 모았던 정부와 금융노조간 협상은 4시간 이상을 끌었지만 “9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만나자”고 합의하는 데 그쳤다.

▽‘탐색전’에 그친 마라톤협상〓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협상 시각보다 1시간 가량 빠른 오전 9시 은행회관에 도착, 협상을 준비했다. 1시간 뒤 긴장된 얼굴로 회의장에 들어선 그는 기자들이 이용득 금융산업노조위원장과 악수해줄 것을 요청하자 “협상이 끝난 뒤에 하자”며 긴장감을 숨기지 않았다.

점심식사도 배달된 중국음식으로 해결한 양측은 그러나 협상장에서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석했던 노조 관계자는 “노조위원장은 시종일관 담배를 피우며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정부측에선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만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이 간간이 “이 만남이 정말 중요하다.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해야 한다”며 대화의 공백을 메워야 했다는 것.

▽오간 얘기들〓이용득 위원장은 협상 직후 “워낙 관치금융 논쟁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가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노조 주장의 골자는 은행만 희생될 수는 없다는 것. 부실은 ‘대기업에 돈 빌려주라’는 정부 지시에 따른 것인 만큼 정부와 재벌을 제쳐두고 은행원만 거리로 내몰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정부가 노조와 협의체를 구성, 노조 입장을 금융지주회사법안에 반영시키고 △대우채 강제인수 등 정부 요구에 따른 은행부실은 정부가 ‘공적자금’ 추가 투입으로 책임져야 하며 △은행간 강제합병을 추진하지 말 것 △관치금융철폐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정부는 ‘노조가 은행원 감원문제와 논리가 불분명한 관치금융 논란을 섞어 여론의 힘을 얻으려고 한다’고 보고 있다. 이용근 위원장은 협상 뒤 “노조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들었다”고 말했다.

▽문서 없는 창구지도 논란〓이날 협상에서 금융감독원의 ‘공문(公文) 없는’ 창구 지도의 문제가 화두의 하나로 떠올랐다. 공문 없이 금융기관에 전화로 ‘창구지도’를 벌이는 등 지나친 개입은 중단돼야 한다는 주장.

노조는 △99년 은행의 대우채 인수 △지난달 은행권의 종금사 자금지원 △은행주축의 채권펀드 조성 등을 열거했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받아들인 ‘대우채 떠안기’로 금융시장이 망가졌지만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헌재 장관 등은 “국민의 정부에서 관치금융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노조가 금감원 부원장이 국민은행장으로 ‘이동’한 사실을 들먹이자 이장관은 “방법상 문제는 있었지만 관치금융으로 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재협상 전망〓2차 협상 결과 역시 낙관하기 어렵다. 노조가 요구한 3개 사항은 1차 협상에서 구체적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회담 후 이용근 위원장은 “구조조정 원칙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임을 재차 천명했다.

금융권에서는 2차 협상을 약속한 것에 적잖은 기대를 품는 분위기다. 정부와 노조 모두 파업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정부도 불필요한 논쟁보다는 구조조정 원칙을 고수하되 현실적 대안을 찾는 눈치다. 금감위 간부들은 7일 오후부터 위원장 집무실에서 신중하게 구수회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했다.

이에 따라 1차 협상은 양측이 최종카드를 숨긴 채 명분 쌓기에 주력하는 양상이었지만 9일 협상에 앞서 물밑대화가 이어진다면 극적인 타결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견해도 나오고 있다.

<최영해·김승련·이나연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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