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항공유 '바가지 판매']정유社 원가자료도 제공안해

  • 입력 2000년 7월 4일 19시 14분


감사원의 ‘군 항공유 구매에 관한 감사결과’ 보고서는 국내 정유사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항공유 등 석유제품을 팔면서 ‘바가지’를 씌워 폭리를 취했다는 것이 요지다.

이는 공급자 위주로 운영되는 국내 석유시장에서 일반 소비자는 물론 국민의 혈세로 석유제품을 구입하는 군마저 정유사들의 횡포에 놀아났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정유사가 먹어치운 혈세〓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 조달본부는 98, 99년 국내 5개 정유사로부터 항공유와 경유를 구매하면서 민간항공사 철도청 수협중앙회 등에 비해 높은 원가를 인정, 1230억여원을 더 지불한 것으로 지적됐다. 어떻게 이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관련법 규정상 국방부는 다른 민간기관과 달리 월별로 연동하는 싱가포르 국제석유시장가(MOPS)를 기준으로 납품단가를 정할 수 없었다”며 “지난해 9월 법이 일부 개정돼 올해는 국제시장가를 기준으로 납품계약을 체결했다”고 해명했다.

그 이전의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계약을 한 뒤 60일까지 물가변동률에 따라 ±5%의 범위 내에서 계약금액을 올릴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에 따라 조정하다보니 계약금액이 높아졌다는 것.

그러나 감사원은 감사보고서에서 “국방부 조달본부는 우선적으로 국내 다른 대량 거래처의 구매가를 정유사들로부터 제출 받거나 이들 업체를 대상으로 구매가격을 확인 조사해 예정 납품가의 기초금액을 작성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원가’〓국방부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해 11월 조달본부 물자부 물자원가1과 산하에 원가산정팀을 꾸려 항공유의 원가를 산정하려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석유제품 원가를 산정하기가 힘든데다 정유회사로부터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원가계산 기초자료를 제출받지 못해 사실상 원가산정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원가산정팀은 지난해 11월29일 SK, LG, 현대, S-Oil, 인천정유 등 국내 정유 5사에 공문을 보내 “계약단가의 적정성 문제가 제기돼 적정가격을 판단하고자 하니 원가계산 기초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정유사들이 이를 제출하지 않은 것.

이에 대해 정유사 관계자는 “석유제품은 연산품이어서 원가계산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방부 조달본부가 요구한 원가산정 방식에 관한 기초자료를 제출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감사원은 국방부에 대해 “앞으로 석유류를 구입할 때 국내의 석유류 대량 소비업체(또는 기관)의 실거래가격이나 국제유가에 연동해 가격을 결정할 것”을 권고했다.

대한항공 등 민간 항공사와 한국전력 철도청 등 국내 석유류 대량 소비업체는 싱가포르 국제석유시장가를 기준으로 물량을 공급받기 때문에 감사원은 본보 6월28일자에 언급했던 MOPS에 연동할 것을 요구한 셈.

▽국방부와 정유사의 입장〓이 같은 감사결과에 따라 국방부는 국내 정유사들의 담합입찰 등 불공정거래 행위 여부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라 차액 1200여억원의 회수 여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관계자는 “공개입찰을 통해 결정된 납품가로 석유류를 공급받았기 때문에 현행법상 감사원이 지적한 차액을 회수할 길이 없다”며 “공정위를 통해 불공정 거래행위가 확인될 경우에만 차액환수 시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정유사들은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사들의 원가가 적정하다는 삼일회계법인의 원가산정결과까지 국방부에 제출했으나 감사원 감사결과에는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일단 사적 계약인 만큼 국방부는 환수조치를 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 권고란?▼

감사원의 감사결과 처리에는 △변상판정 △징계요구 △시정요구 △주의요구 △개선요구 △권고 △통보 △고발 등의 방법이 있다.

이 가운데 권고는 관계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처리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행정운영 등의 경제성 효율성 및 공정성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취해지는 조치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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