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訪北 경제인들의 움직임

  • 입력 2000년 6월 13일 19시 17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북한 방문에는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장관과 이기호(李起浩)대통령경제수석이 공식 수행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주요 경제단체 및 4대 그룹 대표와 북한출신 기업인 등 10명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함께 평양에 머물고 있다. 이장관과 이수석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최고 사령탑. 방북 기업인들도 국내경제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로 짜여져 있다. 따라서 이들의 북한내 행보와 구상은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지렛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李)-이(李)라인의 역할〓이장관과 이수석이 정상회담 기간 중 어떤 인물을 만나고 어떤 주제를 논의할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김대통령과 방북기간 내내 함께 움직일지, 별도의 활동기회가 주어질지조차 불분명한 상태.

이장관은 방북 전날인 12일 간부회의에서도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시중 자금사정을 면밀히 점검하고 금융개혁 방안을 잘 챙기라”는 지시 외에 북한에서의 일정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이 라인’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가 남북경협의 큰 틀을 짜는 것이라는 점에는 대다수 정부 관계자들이 동의한다.

우선 남북경협 문제를 전담해 다루는 남북 경제공동위원회의 구성에 대해 북한측과 의견을 나누고 얘기가 잘 될 경우 가동시기를 앞당기자는 원칙에도 합의할 공산이 크다는 관측.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해 우리 정부가 능력 범위 내에서 최대한 지원할 방침임을 실무 차원에서 거듭 천명하는 역할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이수석은 경제문제에 관한 한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수행원이라는 점에서 막후에서 ‘모종의 임무’를 담당할 가능성도 있다.

이장관과 이수석의 북한측 파트너로는 한성룡 노동당경제담당비서와 홍성남 정무원총리,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지금까지 남북경협을 주관하면서 우리 기업인들의 창구역할을 해온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과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도 대화의 자리가 마련될 전망.

재경부 관계자는 “앞으로 남북이 경제 분야에서 세부적으로 논의할 사항이 산적한 만큼 이장관과 이수석이 방북을 통해 직접 확인한 북한의 경제상황과 북측 수뇌부의 분위기는 남북경협의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인은 대북사업 탐색 경쟁〓이번에 북한을 방문한 재계인사는 △경제단체 대표로 김재철 무역협회회장, 손병두 전국경제인연합회부회장, 이원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4대그룹 대표로 정몽헌 현대아산이사(전 현대그룹 회장), 윤종용 삼성전자부회장, 구본무 LG회장, 손길승 SK회장 △북한출신 기업인으로 장치혁 전경련산하 남북경협위원장, 강성모 린나이코리아회장, 백낙환 인제대총장 등이다.

총선 직후 방북을 추진해온 정주영 전 현대그룹명예회장은 일정을 다소 늦춰 정상회담이 끝난 뒤 북한을 찾을 예정이다.

가장 주목을 끄는 이는 최근 현대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정몽헌 현대아산이사. 현대의 대북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그는 서해안 공단사업의 추진계획에 대해 북한측과 심도 있게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대북 사업을 상당부분 독점해온 현대 입장에서는 남북경협 창구의 다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북한측의 의중을 탐색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삼성 LG SK는 대북 진출의 타당성을 나름대로 검증하면서 북한 고위층과의 교감을 통해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는 데 주력할 방침.

북한출신 기업인들은 자신이 어린 시절 뛰놀며 성장한 고향 인근에 투자할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평소 “대북 투자 성과가 좋아 이익이 나더라도 단기적인 과실을 챙기기보다는 전액을 재투자해 고향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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