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위험관리' 위태…돌발사태 대응 2,3일 걸려

  • 입력 2000년 3월 3일 19시 17분


국내 최대 수준의 자산을 굴리는 A은행. 주거래 관계인 B기업이 흔들릴 때 현 위험관리체제로 대응하는 데 2, 3일이 걸린다.

우선 B사 대출금을 담당하는 부서와 B사 해외법인과 거래하는 현지 A은행 지점의 B사 전산코드명이 다르다. A은행이 투자한 B사의 주식은 증권거래소 코드로 은행 컴퓨터에 입력돼 있는 반면 B사가 발행한 사채는 사업자등록번호로 입력돼 있다.

이 때문에 선진은행들이 컴퓨터 자판을 몇 번 두드려 자동으로 계산하는 B사의 ‘시장위험’을 A은행은 몇 개 부서가 총동원돼 며칠씩 계산해야 한다.

이런 결과로 B사에 닥칠 위험을 신속히 측정하지 못해 과잉 혹은 늑장대응을 하게 된다. 무턱대고 B사와 다른 기업에 대한 여신을 회수하거나 은행이 부실채권을 안게 된다는 의미.

리스크 전문가들은 “국내은행 대부분은 A은행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부가 허용하는 대로 여신 외환 유가증권투자 등 업무를 단계적으로 확대해온 선발 대형은행들이 부서장벽이 높아 리스크관리에 맹점이 많다는 것.

▽베어링은행 파산으로 촉발한 시장위험 관리〓95년 도쿄 주가지수 선물 투자에 실패해 파산한 베어링은행. ‘베어링 교훈’ 이후 국제결제은행(BIS)은 자기자본 평가기준에 ‘시장위험’을 서둘러 포함시켰다. 국제은행 업무를 보려면 ‘최소한 이 정도 위험관리 체제는 갖춰야 한다’는 취지다. 은행이 보유한 주식 외환 채권 등의 시세가 폭락할 경우 은행의 자기자본 건전성이 위협을 받기 때문에 이런 체제가 도입된 것.시장위험 외에도 은행계정의 금리리스크나 업무 시스템 운영상 리스크 등 은행이 맞닥뜨리는 위험은 다양한 편. 현재 BIS 바젤은행감독위 소속 선진국들은 신용 시장위험 관리시스템 도입을 끝내고 은행계정과 시스템오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IMF충격으로 겨우 시작된 국내 위험관리〓외환위기로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내고 외화자산과 유가증권 등이 급등락을 거듭하면서 국내은행도 뒤늦게 이 분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국민 한빛은행 등이 지난해 시장위험 관리시스템을 개발한 데 이어 은행마다 리스크관리팀에 10명 이상의 인력을 배치했다. 위험관리 컨설팅업체인 이강파이낸셜서비스(LKFS)의 이승현(李承鉉)사장은 그러나 “우리 금융기관들의 ‘위험’에 대한 관심은 자발적인 것보다는 정부 규제에 쫓긴 면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신 BIS기준〓금융감독원은 3일 시장위험을 감안한 ‘신BIS기준’을 공개했다. 은행이 단기매매 목적으로 보유한 주식 채권 외환 파생금융상품의 시세등락에 따른 위험을 반영해 자기자본 건전성을 높이자는 취지.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가 바젤은행감독위 멤버는 아니지만 이 제도 도입은 IMF와 협약한 사항”이라고 설명하고 “내년 말 결산시 시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조치로 은행들의 BIS비율이 0.3% 정도 하락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그러나 자기자본으로 인정되는 후순위채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은행권 부담을 덜어준다는 계획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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