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회장 자진사퇴 안팎]경영실패 첫 책임

  • 입력 1999년 11월 1일 20시 06분


김우중(金宇中)대우회장의 사퇴는 5대그룹 총수중 처음으로 ‘경영실패에 책임을 진’ 사례로 기록되게 됐다. 8월26일 12개 대우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돌입하면서 그의 사퇴는 예견돼 왔다. 그러나 정부는 행여 있을 수 있는 김회장의 막판 ‘돌출행동’을 우려해 치밀하게 ‘자진사퇴’를 유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회장의 경영권 사퇴로 대우그룹의 해체 및 회생작업은 더욱 가속도가 붙게 됐다. 당장 감자(減資) 및 출자전환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기존 경영진과 채권단의 ‘마찰’을 피할 수 있게 됐고 자산매각 등도 보다 과감히 추진될 전망이다.

▼정부 항복선언 유도▼

▽워크아웃 직전의 ‘줄다리기’〓정부 내에서는 8월25일 김회장의 청와대 정재계간담회 참석을 ‘항복선언’으로 받아들였다. 정부는 당시 청와대 간담회에 김회장이 불참할 경우 국내외에 ‘정부―재계 구조조정 갈등’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며 그의 귀국을 종용했다. 반면 김회장은 측근들과 함께 경영권을 담보로 정부와 ‘마지막 거래’를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우 관계자는 “김회장의 의도를 파악한 정부가 경영진에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전했고 채권단이 주도하는 재무구조개선 특별약정에 사장들이 전격 사인하면서 주도권을 정부가 쥐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법적으로 경영권을 사수하기 어려워진 김회장은 귀국했고 정부는 정재계간담회 하루 뒤 주력사의 워크아웃을 발표했다.

▼끝까지 경영권 집착▼

▽10월20일의 담판〓자진사퇴라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대우그룹은 물론 채권단에서도 김회장이 막판까지 경영권에 집착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 사장을 지낸 한 경영인은 “김회장이 최근까지 자신의 재기의사를 청와대 및 정부, 언론에 타진하며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전했다.

김회장의 조기사퇴가 가시화된 것은 자신이 기획한 전경련 주최 서울경제포럼의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20일 급거 귀국하면서부터. 대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오호근 기업구조조정위원장에게 ‘자동차 경영권이라도 남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며 “김회장은 이날 회동에서 사실상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읽고 곧바로 출국했다”고 전했다.

▼구조조정 가속될듯▼

▽사퇴 이후〓김회장 및 사장단의 사퇴로 대우 채권단은 출자전환―감자에 이르는 재무구조 개선과정에서 원만하게 경영권을 넘겨받게 됐다. 경영진 사퇴를 요구하며 일방적 워크아웃에 거부감을 보여온 노조를 설득하기도 훨씬 용이해졌다. 대우자동차 등 원매자가 정해진 계열사의 조기매각을 통해 추가 자금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기업 회생을 노리기도 쉬워졌다.

그러나 김회장 및 계열사 사장들의 ‘책임론’이 자진사퇴로 모두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향후 워크아웃 추진과정에서 부실규모가 더욱 늘어나고 고의 분식(粉飾)의혹이 불거질 경우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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