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빅딜案 거부]『더 세게 뼈 깎으라』요구

  • 입력 1998년 11월 30일 19시 30분


국내외적으로 한국 경제개혁의 최대현안으로 떠올라 있는 5대그룹 구조조정이 격랑(激浪)에 휩싸여 급박한 상황을 맞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위촉기관인 사업구조조정추진위원회가 5대그룹의 4개업종 빅딜(대규모 사업교환)계획안 가운데 정유를 제외한 철도차량 항공기제작 석유화학 등 3개업종에 대해 ‘수용거부’를 선언했기 때문.

무슨 일이 있어도 연말까지 5대그룹 구조조정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겠다고 누차 강조했던 정부는 5대그룹측에 좀더 가시적인 계획을 내놓으라고 전면 압박에 나섰다.

급기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정부―재계 간담회를 직접 주재하겠다는 강수를 던졌다. 5대그룹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최종 수순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정부의 불만〓채권금융단 모임형식을 띤 사업구조조정추진위는 11월30일 정유와 철도차량 항공 석유화학의 4개 업종 빅딜안 중 철도차량과 항공기제작 업종에 대해서는 새 계획을 제출토록 하고 석유화학은 지원을 전제로 한 빅딜대상에서 제외시키기로 확정했다.

금감위는 3개 업종 빅딜안에 당초의 대전제인 ‘강력한 자구노력’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재계가 약속한 기업 및 금융기관의 손실분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재정경제부 관계자도 “정부가 5대그룹에 요구하는 것은 책임을 분담하려는 자세를 가져달라는 것”이라며 “5대그룹이 주채권은행에 제출한 업종별 경영개선계획서를 보면 요구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과도한데 자구계획은 애매모호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강도높게 지적했다.

즉 석유화학 항공기제작 철도차량 등의 빅딜계획에는 인원감축과 설비매각 등에 대한 실천의지가 미흡하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5대그룹이 현재 출자전환을 요구하는 대출금은 총 1조3천억원 규모. 그러나 5대그룹 스스로는 경영개선을 위해 자구노력을 하겠다거나 외자유치에 힘쓰겠다는 원칙만 나열할 뿐 구체적인 계획을 담지 않고 있다는 것.

▼시간이 별로 없는 정부와 재계〓그러나 ‘연내 마무리’라는 시한을 감안할 때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고민.

급기야 대통령이 정재계간담회를 주재하겠다고 나선 것도 결국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데 대한 초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다시 공을 넘겨받은 5대그룹은 15일까지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확정짓기 위해 빅딜안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금감위는 금주중으로 3개 업종의 수정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금감위는 11월30일이 경영주체 선정 시한이었던 반도체에 대해서는 “외국평가기관의 실사로 다소 늦어질 수도 있다”며 여유를 주었다.

하지만 재무구조개선약정 시한은 늦출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금감위는 빅딜을 포함한 5대그룹 구조조정은 재계가 먼저 하겠다고 나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금감위는 재계가 11월 5일 정재계 간담회에서 11월 20일까지 빅딜안을 제출하겠다고 약속했음을 상기시켰다.

금감위는 5대그룹 구조조정의 큰 틀을 연내에 마무리 짓지 못할 경우 내년에도 한국의 대외신인도가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시한을 넘길 경우에는 주채권은행이 △한계 계열사 및 사업부문의 매각 또는 정리 △신규여신 중단 △보증채무 이행청구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5대그룹은 외국기업이 한국을 지켜보는 ‘창문’이기 때문에 이들의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되지 않으면 외자 도입이나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내년에도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계와 금융권 중재에 나서는 정부〓그렇다고 정부는 재계와 3개월 가량 협의해온 반도체 선박용엔진 발전설비 등을 포함한 7개업종의 구조조정 협의를 없던 일로 해버릴 수 없다는 입장.

재경부 관계자는 “사업구조조정위원회의 일부 업종 빅딜안 수용거부는 최종 결정이 아니며 내주중에 보완해서 제출하면 된다”며 “재계가 금융지원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안을 내놓도록 독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사업구조조정 대상 7개업종의 경우 단일법인을 설립하는 계열사의 부채를 그룹내 다른 계열사들이 떠안는 방법으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방안을 재계에 제시할 계획이다.

또 채권금융단측에도 석유화학 업종을 배제하는 것은 기존 업종의 외자유치 등에도 부정적인 요인이 많다는 입장을 전달하고 가급적 수정해서 보완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관련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은 11월30일 “석유화학 빅딜안은 완전히 거부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계획을 마련하라는 것”이라며 “5대그룹은 일부 수정을 요구받은 항공기 철도차량 등과 함께 석유화학에 대해서도 금주중 수정계획을 제출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진·박현진·신치영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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