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받는 세무행정시대로下]대통령 세정관련 지시 자제를

  • 입력 1998년 10월 24일 19시 25분


국세행정이 중립을 지키려면 먼저 탈세의 고리를 끊고 세무조사를 비롯한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조세전문가들은 권력의 간섭도 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시민단체들은 내부 고발이 나올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세정(稅政)은 홀로서야 한다〓모든 납세자가 소득 및 거래 규모에 따라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풍토가 자리잡혀야 한다. 그래서 담당 세무공무원이 누군지조차 알 필요가 없게 되면 정치자금을 걷을 수 없게 된다. 뇌물을 챙기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성실납세의 조건으로는 전산관리를 통한 과학적인 세정운용과 세무공무원의 성실성이 꼽힌다. 이것이 바로 세정 중립의 첫걸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국세청 관계자는 “세금을 제대로 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며 “따라서 국세행정은 앞장서서 납세자를 이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가장 큰 권한인 세무조사의 투명성 확보도 요구된다. 국세청은 80년대 초 조사대상 선정과 조사의 집행을 분리했다. 조사대상 선정과 집행을 한 곳에서 하면 세무공무원이 대상을 자의적으로 선정해 조사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세무조사의 자의성을 더 줄이기 위해서 선진국처럼 대상자 선정방식도 무작위로 바뀌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국세청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세무조사를 서면으로 진행해 납세자가 세무공무원을 만날 필요가 없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현금거래비중이 높은 현 상황에서는 계좌추적만으로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사회경제적인 여건도 함께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국세행정이 원칙을 지키고 중립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변수는 대통령의 의지다.

물론 성용욱(成鎔旭)전청장의 87년 대선자금 모금과 임채주(林采柱) 전청장 및 이석희(李碩熙) 전차장 사건은 양상이 다르다. 성전청장은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다.

반면 작년 모금사건은 검찰 수사와 국세청에 따르면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중립을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요구와 이전차장의 정치적인 야심이 복합돼 발생했다.

한 조세전문가는 “국세청장은 임면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을 최대한 반영하게 마련”이라며 “따라서 대통령은 국세행정과 관련한 지시를 최소한으로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 들어서도 국세청이 대통령의 뜻을 받들다가 원칙을 어긴 적이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음성불로소득자에 대한 과세강화를 거듭 강조하자 국세청은 7월 개청 후 처음으로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자 명단을 공개했다. 여론은 탈세자 명단 공개에 박수를 쳤다.

그러나 국세청은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스스로 국세기본법을 위반했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국세청은 탈세자를 검찰에 고발할 때에도 개별 납세자의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

더구나 국세청이 고발한 납세자 가운데 일부는 지난달말 검찰로부터 ‘단순한 세금신고 누락’으로 무혐의처분을 받았다.

▼내부 고발 활성화돼야 한다〓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청차장이 한나라당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국세청의 몇몇 간부들은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무원 신분으로 선거에 뛰어든 불법은 고발되지 않았다. 세무공무원들은 조직의 생리상 내부 정보를 드러내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세무공무원의 내부 결속력과 관련한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의 전언. “10여년 전 치안본부 고위간부가 내부고발로 구속됐을 때 국세청 간부가 ‘우리 조직에선 그같은 내부고발이 절대 있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비리를 누설하면 조직에서 영원히 따돌림을 받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내부 비리 고발자에게 비리금액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미국 국방부의 ‘휘슬 블로어’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백우진기자〉w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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