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지방경제/공단 르포]기계소리 사라지고 한숨뿐

  • 입력 1998년 10월 6일 19시 50분


인천 남동공단 입구에 있는 4층짜리 공단 사무실. 전면에 걸려 있는 대형 플래카드 하나가 눈길을 끈다. ‘아파트형 임대공장, 임대료와 임대보증금 34% 인하.’

“지난해 완공하고 입주업체를 모집했는데 신청업체가 단 한 건도 없었던 겁니다. 안되겠다싶어 임대료를 내리자 입주 신청이 조금씩 들어와 70% 정도 임대가 됐습니다.” 공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해 이맘때 80% 수준이던 공단 가동률은 현재 65%로 떨어져 있는 상태.

그나마 다른 지역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남동공단의 상황은 신음하는 지방경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자유치 외엔 방법이 없다.” 부산 울산 등지의 지자체 고위관계자들은 요즘 이런 말을 공공연하게 털어놓고 있다.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라는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공업단지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불안한 부산 경제’를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 삼성자동차가 입주한 신호공단.

삼성이 퇴출되면 신호공단은 물론 인근에서 부품을 만드는 양산 창원공단도 위기에 빠질 것이 뻔한 상황.

신호공단과 부산을 연결하는 기간도로로 건설했던 4차로 신호대교는 현재 삼성차 직원들의 출퇴근용으로 전락해버렸다.

부산상공회의소 김명수(金明守)부장은 “이 지역 5개 종금사 중 LG종금을 제외한 4개사 퇴출이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며 “이 여파로 현재 8백개 중소기업이 도산했거나 도산위기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 협력사가 몰려 있는 경기 시화 반월공단은 절반 이상이 부도나고 나머지도 자금난으로 허덕이고 있는 형편. 1년전만 해도 시화반월공단과인근도로는 하루종일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들로 가득찼다. 단지 사무실에는 “교통난을 해소해달라”는 민원이 쏟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출퇴근시간조차 도로에 차가 별로 없을 만큼 공단 자체가 개점 휴업 상태.

평일 대낮에도 공장마다 문만 열어놓고 일감이 없어 설비를 놀리는 업체가 태반이다. 마치 공휴일을 방불케하는 썰렁한 분위기다.

남서해안지역의 대표적 산업단지인 목포 대불공단 한편에 자리잡은 신흥중공업 앞. 지은 지 얼마 안된 듯 하늘색 페인트로 칠한 건물의 외양이 산뜻하다. 그러나 한참 일하느라 바쁠 오후 2시인데도 공장 안에서는 기계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인기척도 느낄 수 없다.

회사 출입문 앞에 걸려 있는 팻말엔 ‘출입금지―은행 담보 물건이므로 무단출입하지 말 것’이란 경고문이 씌어 있다.

공장은 용역회사에서 파견나온 60대 관리인 혼자서 지키고 있다.

“1월에 공장 완공하고나서 한 1주일인가 돌리고는 바로 부도를 맞았대요. 한라중공업에 납품하기로 하고 20억원인가 들여 지었다는데….”

신흥중공업의 스토리는 요즘 대불공단 입주업체들 사이에서 한라중공업 부도가 빚은 ‘비운의 상징’이자 바로 목포 지역경제의 현주소.

올초 한라중공업이 부도를 내면서 목포 경제는 치명타를 맞았다.

90년대 초반 목포는 ‘서해안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캐치프레이즈가 시내 곳곳에 넘실댔다. 마침 한라그룹이 이곳에 조선소 등 공장을 대거 이전하면서 ‘한라타운’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목포의 꿈’은 찾아볼 수 없다.

한라가 공사비의 80%를 부담해 건설키로 한 신항만 건설은 이미 올초 착공 예정일을 넘겼다. 5만t급 22척을 동시에 입항할 수 있는 규모로 대중국 교역 등 서남해안의 중심항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기약이 없는 상태다.

대불공단내 H사 관계자는 “막 도약을 하려던 목포 경제가 IMF폭탄을 맞고 10년전으로 후퇴해버렸다”고 한숨을 지었다.

목포를 떠나 광주로 가봐도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광주는 아시아자동차가 지역경제의 30%를 차지한다고 할 만큼 아시아차의 비중이 절대적. 그러나 기아차와 묶인 아시아차의 처리가 자꾸 미뤄지면서 지역 경제를 누르고 있는 먹구름은 더욱 짙어만 가고 있다.

〈안산·창원·광주〓이명재·박래정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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