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겉도는 경제정책]中企-수출-부동산 현황

  • 입력 1998년 9월 10일 18시 56분


《정부가 돈을 풀어도 기업에까지 흘러가지 않는다.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도 얼어붙은 시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업계에선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이라서 효과가 없다”는 불만이 거세다. 수출금융 및 중기 지원 대책과 부동산 경기대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짚어본다.》

정부가 중소기업 및 수출기업 지원대책을 많이 내놓았지만 돈은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

▼돈이 아니라 신용이 없다〓한국은행은 신정부출범 이후 3월과 9월 무역금융 지원용 총액한도대출을 3조원 가량 확대했다. 무역금융 융자한도와 비율도 자율화해 은행에 일임했고 금리도 낮췄다.

그렇지만 돈은 돌지 않는다. 한 시중은행 심사역의 말. “은행에 돈은 있다. 본점에서도 돈을 꿔주라고 하고 나도 꿔주고 싶다. 돈을 꿔줄 만한 기업이 있으면 소개 좀 시켜달라.”

문제는 보증이라는 것. 부동산담보가 가치를 잃은데다 보증보험회사의 부실화는 보증제도의 커다란 공백을 초래했다.

인삼수출업체인 금산인삼가공㈜은 90년 창업 이래 농협 금산군지부에서 공장용지 등을 담보로 지급보증을 받아 농산물유통공사에서 우수농산물수매자금을 대출받아 써왔다. 그런데 농협이 올들어 부동산 담보를 인정하지 않고 보증을 끊는 바람에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용대출 여건이 안돼 있다〓업계에선 신용대출을 기대하지만 은행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중소수출업체인 ㈜홍림의 L이사는 “은행의 신용대출한도가 지난해 5천만원에서 올해는 1천만원으로 크게 줄어 운전자금 조달에 애를 먹는다”고 불평했다.

은행 심사역의 생각은 다르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 직원이 온다해도 방법이 없다. 엉터리 기업회계자료를 놓고 신용분석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은행원들은 우선지원대상 기업에 신용대출했다가 부실이 생기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금감위의 말도 믿지 않는다.

“부실에 대해 개인배상책임까지 묻겠다고 했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은행도 구조조정에 바쁜데 마구잡이 대출 책임을 묻지 않을 은행이 있을까.”

▼수출보증의 한계〓수출기업이 1백만달러 짜리 수출신용장(LC)을 들고 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가면 보증한도와 수출실적 신용리스크 등을 감안, 20∼30% 정도밖에 보증을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은행은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담보를 요구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추가 담보를 내놓지 못한다.

한번 신용보증을 받으면 3개월간 신규보증을 받을 수 없어 이 기간중 새로운 LC가 생겨도 허사다.

▼시행도 안되는 대책들〓8월 19일 정부가 내놓은 수출대책의 핵심은 무역어음 할인을 활성화하겠다는 것. 산업은행이 1조원을 마련해 시중은행이 무역어음을 할인하는 만큼 재할인해주겠다는 것이 골자다.

발표 3주가 지났지만 이 대책은 실행되지 않고 있다. 산업은행의 재할인금리(연 12%대)가 높기 때문에 이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 시중은행의 태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또 “30대 계열 기업군의 무역어음을 할인해주고 싶어도 여신한도 등에 묶여있어 많은 액수를 할인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무역어음 할인에 대해 수출보험공사가 보증지원을 해주는 방안도 발표된지 3주가 지났지만 현재 실적이 한건도 없다.

대기업 발행 구매승인서를 근거로 중소 중견기업의 무역금융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7월에 발표된 수출대책의 골자. 현장에서는 대표적인 탁상행정으로 꼽히고 있다.

▼대기업 지원은 더 부족〓지금까지 수출대책은 대부분 중소 중견기업에 집중되어왔다.

그러나 정작 이런 지원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6∼30대 계열 기업들이라는 것. 무역협회 관계자는 “수출 주력군인 대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버려야 한다”면서 “국제기준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대기업에 대한 추가적인 수출지원책이 나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송평인·박현진기자〉pi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