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금융인 처벌]막대한 퇴직금 『내몫 챙기기』

  • 입력 1998년 1월 14일 19시 42분


“지금 은행들은 기업과 예금주 등 온 국민의 적(敵)이 돼버렸다. 대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재정경제원 고위관계자는 14일 금융기관을 보는 정부의 시각을 이같이 전했다. 이번 ‘대수술’은 뇌물수수와 관련한 몇몇 경영진을 구속하는 정도의 과거 문책방식과는 궤를 달리한다. 비리는 물론 포괄적인 경영책임도 묻겠다는 게 정부의 뜻이다. 부실 금융기관은 당연히 폐쇄 또는 인수합병되고 나머지 금융기관의 경영진 역시 상응하는 ‘처벌’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은 물론 국책은행도 태풍권에 들어있다. 재경원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 사례를 몇가지 꼽는다. 은행들이 본연의 임무인 자금공급 기능을 팽개치는가 하면 막대한 퇴직금으로 내몫챙기기, 커미션수수와 예금횡령 등. 사법처리 여부는 물론 새정부가 판단할 일이지만 명백한 비리 증거자료들이 제시되면 처벌하지 않을 정권은 없을 것이라는 게 재경원의 판단이다. ▼심각한 모럴헤저드〓수출기업에는 돈이 없다며 자금지원을 기피하면서 명예퇴직으로 최고 2억5천만원을 얹어준다. 재경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새해 들어 수출대금회수기간이 통상 3∼6개월정도 걸리는 기한부 수출환어음(유전스)은 여전히 매입을 기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은행권은 새해 벽두부터 대대적인 명예퇴직을 실시한다. 정리해고제 도입을 앞둔 이번 명퇴는 「위로금」을 받고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므로 지원자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은행의 경우 4급(과장 및 장기근속 대리)이상 1급(부서장 및 지점장)까지 직원 4천3백여명을 대상으로 명퇴신청을 접수하고 있다. 조흥은행도 1∼4급 직원을 대상으로 이달 중에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조흥은행은 명퇴신청 접수를 알리는 공문에서 이번이 마지막 명퇴임을 명시했다. 명퇴자들에겐 최대 50개월분 임금에 해당하는 위로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재경원은 퇴직금 적립부담이 늘어나는 등 금융기관 경영상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계 종사자들의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모종금사 과장이 고객돈과 회사돈 39억원을 챙겨 달아났는가 하면 은행직원도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다가 적발됐다. 금융거래는 신용이 생명이고 금융계 종사자는 신용거래의 수호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직업윤리가 붕괴되고 있다는 신호다. ▼물갈이가 필요하다〓재경원은 금융기관의 현경영진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고 판단한다. 금융위기에 대한 상황인식이 제대로 안돼있을 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땅에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어느 은행장은 정부의 수출자금 지원독려에 “수출기업의 자금수요가 적어서 지원실적이 낮다”고 변명, 실소를 자아냈다. 따라서 과거식 표적사정으로는 금융기관의 모럴 헤저드를 도저히 치유할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이런 배경에서 경영진의 경우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논의들이 나온 것이다. 특히 금융기관의 빚에 정부보증을 해주기 위해서도 이같은 물갈이는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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