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50人 경제진단]외화확보-「합의」준수가 핵심

  • 입력 1997년 12월 14일 19시 57분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그러나 극복 가능하다. 대외신뢰 확보가 시급하고 금융 및 재벌의 구조조정이 최대과제다」. 본보가 13,14일 각계 50인으로부터 경제위기 진단 및 긴급처방을 들은데 대한 응답의 중론이다. 하지만 세부 진단이나 처방에서 이들은 다양하고도 진지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어느 정도 위기인가〓『생각보다 심각하다』 『최악이다』는 게 주류. 유한수(兪翰樹)포스코경영연구소장은 『우리 경제 자체로나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최악의 국면』이라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낙관하지만 당장 대외채무 지급불능 가능성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순원(鄭淳元)현대경제사회연구원 상무도 『금주중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협조자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대외채무 지급불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 김수행(金秀行·경제학부)교수는 『경제가 악화되는 5단계 중 지금은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라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밖에 다수의 응답자들은 경제위기가 심각하다고 진단하면서도 충분히 극복가능하다고 말해 한국인의 저력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위기는 누구의 책임인가〓대부분의 응답자들은 기업의 무리한 차입경영과 금융기관의 감독소홀,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처 미흡 등이 복합돼 경제위기가 오게 됐다고 답했다. 이처럼 공동책임론이 부각되는 가운데서도 정부 한국은행 등의 정책 실기(失機)가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자영업자인 이인세(李仁世)씨는 구체적으로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강경식(姜慶植)전경제부총리를 경제위기의 최대 책임자로 지목했다. 정부책임론이 유독 강하게 제기된 것은 기업의 과다차입이나 금융기관의 부실화도 정경유착 또는 관치금융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위기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단기적으로는 외화 확보를 통해 눈 앞에 닥친 위기를 넘기고 장기적으로는 △IMF와의 합의 준수 △국제신인도 회복 △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이 현 경제위기를 풀 수 있는 열쇠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금융개혁위원회 이덕훈(李德勳)행정실장은 『한국이 자력으로 위기를 극복할 능력을 상실한 만큼 IMF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하며 IMF의 권고에 거부감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내적으로는 각 부문의 신뢰회복을 통해 금융거래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금융계와 업계에서 많이 제기됐다. 특히 경영자들은 『금융기관이 살기 위해 기업을 죽여서는 안된다』(수산그룹 박주탁·朴柱鐸회장), 『돈은 기업의 피인데 그걸 막아버리면 다 죽는다』 『정부가 나서서 중단되다시피 한 수출을 활성화시켜라』(제일피알 기노창사장) 등 절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최근 금융경색으로 인한 업계의 위기감을 여실히 읽을 수 있었다. 한편 재벌기업에 대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문하는 소리도 높았다. ▼새 대통령 당선자가 우선 할 일〓IMF 합의를 준수할 것을 대내외에 분명하게 선언하고 대외신인도 회복과 외화 확보를 위한 경제외교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가장 많았다. 불투명한 우리경제의 앞날에 대한 청사진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이와 함께 『실물을 잘 아는 사람이 경제정책 결정에 관여해야 한다』(동양종합금융 조왕하·趙王夏사장), 『당선되자마자 정권을 인수, 권력누수로 인한 경제위기를 최소화해야 한다』(주부 임경애·任敬愛씨), 『정부조직 축소와 공무원급여 삭감으로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대우건설 김종한·金鍾翰과장) 등의 요구도 나왔다. 이같은 목소리들을 뒤집으면 민심이 나타난다. 경제위기를 앞장서서 타개했어야 할 정부가 그동안 보여준 탁상행정과 무능 무책임을 소리높여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천광암·이용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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