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합의문 발표]정치 생활등 모든 분야 간섭

  • 입력 1997년 12월 3일 19시 47분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한국의 경제주권을 가져 갔다. 그러나 IMF의 정책개입의 파장은 단순히 경제분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경제주권을 매개로 정치 사회 문화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파상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주권 문화적 주권도 경제주권을 통해 간섭당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나라 전체가 IMF의 영향권에 들어간 셈이다. ▼정치적 주권, 이미 침해당하고 있다〓IMF는 대선후보들이 이행조건을 준수한다는 약속을 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앞서 후보들에게 압박을 가한 것. 대선후보의 「각서」가 없으면 자금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게 IMF의 입장. 각서에 서명하느냐의 여부가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의 기본권리인 선거권이 이미 침해당한 것이다. 정치적 주권침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예산과 조세문제는 중요한 정치행위지만 이 또한 IMF의 권한이 돼버린다. 국민에게 세금을 얼마나 걷을 것이지, 또 걷은 세금은 어떻게 쓸 것인지를 IMF가 사실상 결정하게 된다. 국민복지를 위해 써야할 세금을 빚갚는데 쓰라고 요구하면 그대로 들어줘야 한다. 지역구사업에 들어간 예산도 IMF가 불요불급한 지출로 간주하면 어려워진다. 국회의원들이 지역사업 로비를 하려면 IMF를 설득해야 하는 웃지못할 비극이 현실로 다가온다. 대통령의 통치권도 제한적으로 행사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대북(對北)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돼도 우리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결정은 어렵게 된다. 통일문제조차 간접적으로 IMF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국민이 뽑는 대통령의 권한이 이렇게 되다보니 이번 대선은 반쪽짜리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나머지 반쪽 대통령은 물론 IMF다. ▼문화 주권도 위축된다〓IMF 이행조건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100% 시장개방이다. 합의문건에는 「수입제한조치의 폐지」라고 표현돼 있다. 미국이 세계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영상문화 등 아메리카 문화산업이 거의 규제없이 들어올 구실을 제공한 것. 게다가 일본문화를 차단해온 각종 장치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전망이다. 일본 만화와 영화, 패션 TV프로그램이 해방 이후 50년만에 다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취약한 문화예술산업이 받을 타격이다. 그나마 영화상영 쿼터제 등으로 명맥을 유지해온 영상산업은 할리우드에 종속되거나 3류 비디오산업으로 전락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 생활주권도 흔들린다〓정부주도의 외제품 배격운동은 상상하기 어렵게 된다. 곧바로 개방약속 위반으로 긴급자금 회수조치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의 행동도 제약될 수밖에 없다. 예산감축으로 생활보호대상자 노약자 등에 대한 정부지원도 축소되면서 이들의 생존권도 위협받게 된다. ▼행정이 무기력해진다〓정부 또한 정책개입을 받게되면서 완전한 행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진다. IMF 긴급자금이 제공되는대로 IMF상주사무소가 재경원내에 설치된다. IMF는 직원들을 재경원에 상주시키면서 우리나라가 약속한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철저히 감시하게 된다. 감시대상은 금융통화정책 예산 세제 거시경제정책 등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을 망라한다. IMF는 또 3개월마다 본부에서 실무단을 파견, 종합적인 감사를 실시하게 된다. 〈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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