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짓밟힌 APEC의 한국…수치심 자극 질문 쇄도

  • 입력 1997년 11월 24일 19시 42분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했다. 21일부터 밴쿠버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외국언론들은 한국경제에 대한 정보에 굶주려 있었다. 24일 오후(현지시간) 한국대표단이 「한국브리핑」을 실시하자 각국 기자 1백70여명이 발디딜 틈 없이 브리핑장을 가득메웠다. 통로에 마련된 3개의 질문용 마이크에는 외국기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날 브리핑도 한밤중까지 한국 대표단이 묵고 있는 숙소로 외국 기자들의 문의가 쇄도한 데 따라 급히 마련된 것. 김기환(金基桓)경제협력특별대사 양수길(楊秀吉)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허노중(許魯仲)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 등 3명이 브리핑을 맡았다. 김대사는 수출증가율 실업률 무역수지 등과 같은 주요 경제지표가 양호한 점을 들어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는 외환의 단기 유동성부족과 홍콩 증시폭락의 여파로 빚어진 것이며 곧 회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각국 기자들은 한국에 냉소적이었다. 수백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확한 통계를 밝혀 달라는 주문에서부터 △미국과 일본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게 사실인가 △IMF의 금고도 바닥났다는데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앞으로 각종 경제지표를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했는데 현재 부채규모라도 솔직히 밝혀달라 △지난 수십년간 재벌들에 준 특혜가 결국 이같은 위기를 빚은 것 아닌가 △심각한 노사문제를 갖고 있는데 노조가 과연 고통을 분담하겠는가 등 다양했다. 심지어 왜 미국과 일본에는 도움을 요청하면서 중국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 IMF가 정책에 간여하게 되면 북한 식량 지원을 늘리라고 요구하지 않겠느냐는 상식밖의 질문도 제기됐다. 공통점은 한국의 국가적 자존심을 짓밟는 내용들이었다. 이번 외환위기가 한국경제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가 외국으로부터 신뢰성을 잃고 그로 인해 한국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잇따르면서 외환위기가 급속히 악화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밴쿠버〓홍은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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