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없는 전쟁 「기술 훔치기」…산업스파이 수법 상상초월

  • 입력 1997년 6월 25일 20시 18분


「H중공업은 지난해 대형 엔진 생산계획을 세웠는데 일본의 어떤 종합상사가 이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자체 조사를 벌인 끝에 대외비로 분류했던 초안이 관리소홀로 흘러나간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D자동차회사에서는 협력사에서 파견나온 직원이 사무실이 텅 비는 점심 시간을 이용, 주요 부품도면을 본사에 팩스로 보내다 붙잡혔다」.

국가안전기획부가 최근 수년동안 국내외 산업체들을 대상으로 수집한 「총성없는 경제스파이전쟁」의 생생한 사례들이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산업기밀보호전략」 세미나에서 공개될 이 사례들은 산업스파이전이 대기업은 물론 중소 벤처기업 그리고 해외사업 현장으로까지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스파이의 유형은 △문서복제형 △기술협력 빙자형 △전산전문가형 △시설침투형 등 네가지.

국내 굴지의 한 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이 국제회의에 참가하면서 신물질 실험결과를 임의로 들고 나가 유학 당시 알고 지낸 교수에게 넘겨 준 것은 대표적인 문서복제형이다.

기술협력 빙자형은 더 치밀하다. 동남아의 K연구소는 아예 외국기술자를 초청, 공동연구를 하게 해놓고 외국기술자가 외출할 때마다 미리 만들어둔 열쇠로 연구실과 금고를 열고 기술자료를 복제하기도 했다. 90년초 미국 합작사에 직원들을 기술연수 보낸 동남아의 A사는 합작사의 첨단전자기술이 입력된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기밀을 빼냈다.

컴퓨터전문기술이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 국내 P벤처회사에 취업한 외국인 과학자는 회사 허락없이 인터넷에 개인 홈페이지를 개설, 회사의 신기술 내용을 띄워놓았다가 적발됐다. 경기도의 M연구소 연구원은 암호를 붙여 연구개발보고서를 인터넷에 게재해 놓았다가 경쟁사로 옮긴 뒤 이를 복제하고 게시 내용을 삭제해 버렸다.

외국 선진기업들은 아마추어 산업스파이에겐 철옹성과 같다. 「비밀의 성」으로 불리는 IBM은 1924년 창업 이후 한번도 회사 핵심시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사진촬영은 물론 모든 자료에 「내부사용한(限)」이란 경구를 써넣는다. 닭튀김으로 유명한 켄터키프라이드치킨사는 11가지 향료 양념을 배합하는 비법을 4중 금고속에 보관하고 중역 2명에게 관리를 맡긴다.

〈박내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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