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방금 한 그 행동, 알고보면 인류 삶 전체와 연결돼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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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성 지닌 인간 행동의 원인… 생물-심리-문화적으로 설명
순간에 영향 주는 뇌신경학적 동인… 며칠 전서 태아기 경험까지 이어져
타인 돕는 것은 오랜 진화의 산물
◇행동/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김명남 옮김/1040쪽·5만5000원·문학동네

분장일 뿐인데 왜 밥은 따로 먹었을까 1968년 영화 ‘혹성 탈출’의 출연진과 제작진. 출연자들의 회상에 따르면 촬영 당시 침팬지를 연기한 배우들과 고릴라를 연기한 
배우들은 점심시간에 밥을 따로 먹었다고 한다. ‘행동’의 저자는 “인간의 뇌는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일을 황당하리만치 빨리
 해낸다”고 했다. 사진 출처 IMDb
분장일 뿐인데 왜 밥은 따로 먹었을까 1968년 영화 ‘혹성 탈출’의 출연진과 제작진. 출연자들의 회상에 따르면 촬영 당시 침팬지를 연기한 배우들과 고릴라를 연기한 배우들은 점심시간에 밥을 따로 먹었다고 한다. ‘행동’의 저자는 “인간의 뇌는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일을 황당하리만치 빨리 해낸다”고 했다. 사진 출처 IMDb
미국 남북전쟁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게티즈버그 전투에선 단발식 머스킷 총이 2만7000정 가까이 회수됐는데, 그중 약 2만4000정은 한 번도 발사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병사 대부분은 총을 쏘기는커녕 부상자를 돌보거나, 명령을 외치거나, 달아나거나, 망연자실 배회했다는 것. “인간은 근거리에서 타인에게 중상해를 입히는 걸 강하게 꺼리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을 쏘기보다는 오히려 집단에 수류탄을 던지는 게 더 쉽다. 멀리 떨어졌다지만 화상으로 상대를 관찰해야 하는 드론 공격도 마찬가지다. 드론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적을 감시하다 공격해 죽인 미군들은 상당수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걸렸다.

인간은 전쟁을 벌여 수천만 명을 죽이지만 동시에 얼굴을 마주치는 적군과 쉽게 유대를 느끼는 존재이기도 하다. 남북전쟁 때도 병사들은 적과 서로 친해져 물물교환을 하거나 전투를 앞둔 저녁에 공동으로 예배를 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에서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 휴전’이 있었던 건 잘 알려져 있다.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모순적으로 행동하는 걸까. 부제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처럼 인간의 폭력성과 이타성이라는 양면, 도덕성과 자유 의지, 부족주의와 외국인 혐오 등에 대해 ‘생물학과 심리학, 문화적 측면을 종합해’ 다룬 책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저자가 집필에만 10년 넘게 걸린 역작으로, 인용한 연구의 출처를 밝힌 후주(後註)만 얇은 책 한 권 분량이다.

전반부는 ‘특정 행동은 왜 일어났을까’라는 질문 아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장을 나눠 설명한다. 행동이 일어나기 ‘1초 전’은 뇌신경과학의 시간대다. 뇌의 편도체는 공포, 불안, 공격성과 관련돼 있고, 통제를 담당하는 이마엽(전두엽) 겉질이 손상되면 사람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뇌에서 정서를 담당하는 부위와 인지를 담당하는 부위가 서로 따로 놀기도 한다. “다섯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죽여도 괜찮으냐”라는 이른바 ‘트롤리 문제’에서 답변자가 ‘직접 한 사람을 밀쳐야 하는’ 상황을 제시하자 뇌의 정서와 관련된 영역이 함께 활성화됐지만 ‘그저 레버를 당기면 된다’는 상황에선 인지 영역만 활성화됐다.

행동하기 ‘몇 초에서 몇 분 전’은 감각의 시간대다. 실험에 따르면 우리 뇌는 피부색에 매우 예민하다. 누군가의 얼굴 사진을 10분의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보여주면 사람들은 뭘 보기는 한 것인지마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진으로 본 얼굴의 인종을 맞히라면 꽤 잘 맞힌다. 피험자와 다른 인종의 얼굴을 보여주면 편도체가 더 잘 활성화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의 뇌가 ‘우리’와 ‘그들’을 순식간에 가른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은 거기에 무조건 지배되는 존재는 아니다. 저자는 “의식이 감지할 만큼 오래(약 0.5초 이상) 노출되면 뒤이어 이마앞엽 겉질이 활성화되고 편도체가 조용해진다. 스스로도 불편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했다.

책은 이런 식으로 ‘몇 시간에서 며칠 전’의 호르몬 이야기와 ‘며칠에서 몇 달 전’의 신경가소성을 살핀 뒤 청소년기, 아동기, 태아기에 겪은 변화가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한다. 뒤이어 문화와 진화로 주제를 넓혀 간다. 저자는 사람이 누군가를 돕는 것에 대해선 “자전거 타기처럼 오래전부터 몸에 익힌 나머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행동의 문제”라고 했다. 위트 있는 문장과 풍부한 사례를 통해 전개하니 책의 두께에 지레 겁먹을 것은 없다. 원제 ‘Behave’.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행동#양면성#진화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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