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는 먼저 내려갈 줄 안다… 있는 힘을 다해 버티지 마라” [책의향기 온라인]

  • 동아경제
  • 입력 2023년 6월 1일 15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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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끈기보다 끊기/유영만 지음/318쪽·1만6800원·문예춘추사



생존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이 시대 일류는 흐름을 파악하고 내려가야 할 때를 가장 먼저 깨닫는다. 삼류는 마지막까지 높은 곳만 바라보다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만다. 호황기 때 익숙했던 습관을 포기하자. 역설적으로 희망은 포기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버티는 ‘끈기’ 아니고 ‘끊기’다.

● 저자의 문제의식은?
“경제가 꽁꽁 얼어붙었다. 언제 풀릴까. 풀리긴 할까. 희망적이지 않다. 그야말로 경제 빙하기 시대다. 봄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열심히 오르려고 하면 안 된다. 시대의 흐름이 변했다. 내려가야 한다. 바닥까지 내려가도 좋다. 낮은 곳에서 여유를 갖고 역전의 힘을 길러야 한다. 저자는 시종일관 바뀐 시대의 새 패러다임을 주장하며, 과거처럼 성장에만 목숨 거는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한국 경제는 지난 30년간 가파른 성장을 거듭했다. 낮은 원자재 가격과 세계 시장 확대에 힘입어 활황을 누렸다. 인적 투자는 성공했고, 레버리지 효과(leverage effect)로 경제 규모도 팽창했다. 세계는 우리를 칭찬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제 전 영역에 활기가 떨어졌고, 앞으로 1%대 성장도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가 구조적 장기 침체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장 시대는 저물고 있다

취업은 힘들고, 비정규직 근로자는 급증했다. 상시화된 구조조정으로 대량의 실업자가 배출되고 있다. 중산층은 사라지고, 양극화는 심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스스로 내려오기를 선택해야 한다. 패배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성숙을 찾아서 떠나는 새로운 출발이다. 그리고 그곳에 기회가 있다.

● 이 책의 무엇이 특별한가?
아직 사람들은 ‘끊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책은 끊어내고 성공한 기업과 직장인들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내려가도 괜찮다고 독자들을 안심시킨다. 또 끊어내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양한 일화를 통해 알려준다.

저자는 우리가 처한 냉정한 현실, 생각의 전환, 위기 극복 방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수적인 인간 본연의 따듯한 인류애까지 쉬운 언어로 어렵지 않게 풀어냈다. 특히 좋은 문장이 주는 위로의 힘과 위트 넘치는 표현력은 책을 단숨에 읽게 하는 동력이 된다.

예컨대 ‘하면 된다고? 해서 망했다’ ‘목표에 목숨 걸다 목숨이 끊어진다’ ‘목표 달성은 숙제가 아니라 축제’ ‘감히 맞설 수 없을 때는 빨리 포기한다’ ‘ 늦었다고 생각할 때 정말 늦은 것’ 등의 문장으로 현상의 이면을 설파한 내용들은 익숙한 무언가를 새롭게 재해석하게 만들며 흥미를 배가시킨다.

배를 버리고 나서야 생존할 수 있었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퇴임 후 내려와서 더 큰 찬사를 받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실업자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성공한 ‘해리 포터’의 저자 조엔 롤링, 상사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현명한 대처로 진실을 밝힌 직장인까지. 책 속에는 미련 없이 버리고 내려가서 성공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껏 녹아 있다.

● 저자는 누구?
비판적 문제 제기를 즐기는 유영만 한양대학교 교수는 지식생태(生態) 학자다. 당연함에 의문을 품고 통념에 통렬한 시비를 걸면서 어제와 다른 통찰을 체득하는 탐험을 추구한다. ‘언어를 디자인하라’,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등 총 90여 권의 저·역서를 출간했다. 다양한 사유를 실험하며 읽고 쓰고 강연하는 지적 탈주를 거듭하고 있다.

신효정 동아닷컴 기자 hj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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