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3B-여성, 아기, 애완동물[청계천 옆 사진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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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사진] No. 12

▶수능 시험이 끝나고 신문을 만든 다음날이면 언론 비평 매체나 독자들이 보낸 메일에서 ‘왜 여학생들 모습의 사진만 쓰냐’는 핀잔을 듣습니다. 그러게요. 왜 남학생들 모습보다는 여학생 모습이 신문에 더 많이 띄는 걸까요? 현장을 취재한 사진기자들이 남학생과 여학생의 모습을 정확하게 반반씩 촬영했는데 그걸 사무실의 편집자들이 여학생들의 모습만 골랐다고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마 포커스가 여학생에게 맞은 사진이 남학생에게 맞은 모습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도 잠시 눈을 감고 머릿 속으로 상상을 한번 해보시죠. 여러분이 신문을 제작하는 편집기자입니다. 기사를 고르고 사진을 골라서 지면에 배치하는 역할이죠. 인터넷과 달리 신문 지면에는 딱 한 장의 사진을 실을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에는 수능을 마친 남학생이 지친 표정으로 부모님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입니다. 또 한 장의 사진에는 마찬가지로 수능을 마친 여학생이 지친 표정으로 부모님을 향해 걸어오고 있습니다.

어느 사진을 고르실 거 같으신가요? 다음날 아침 신문에 실린 사진 중에 어떤 사진이 시선을 더 끌까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정치인들의 사진에 어린 아이들이 가끔 등장합니다. 본인들의 손자손녀도 아닌데 정겹게 안아주고 있는 모습이죠. 가끔 시위현장에도 주최측 부모들이 데려온 아이들이 카메라맨들의 눈길을 끌어 사진에 찍힙니다.

무의식적이지만, 사진에 어린이가 등장하면 여러분도 그 사진에 주목하게 되지 않으시던가요? 여러분이 주목했다면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나 그 사진이 찍히길 원했던 사람들은 시선을 끄는데 ‘성공’한 게 됩니다.

요즘처럼 볼거리도 많고, 자기 일도 바쁜 시대에 대중들의 시선과 관심을 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광고업계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의 시선과 심리를 연구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중 하나로, ‘3B가 시선을 끌어당긴다’는 명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3B 요소로 Beauty(미인), Baby(아이), Beast(애완동물)를 꼽습니다.

▶광고업계에서 발견한 ‘3B의 원칙’은 신문 사진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특히 경제와 관련된 사진에 여성의 모습이 많이 등장하고, 정치인들 사진에 아이들이 등장하는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100년 전 사진으로 가보겠습니다.

1923년 3월 26일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춘계석전대전

경학원에서는 어제 오전 9시부터 문묘춘계석전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는데 고례(古禮)을 쫓아 악의 장엄한 소리를 따라 참배자 일동이 자리에 나아가 사배(四拜)를 마치고 전폐례 초현아헌종헌 분헌례를 행한 뒤에 음복례를 마치고 총독 이외 일반 참가자가 차례로 첨향례를 마치고 오전 10시 반 경에 폐식하였더라.

▶ 문묘,전폐례, 초현아, 헌종헌, 분헌례, 음복례, 첨향례. 생소한 단어들의 나열입니다. 뭔가 조상을 숭배하기 위해 예식을 진행하고 그 단계별로 용어가 있다는 정도만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문묘는 유교의 성인인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라고 검색이 되네요. 그러니까 공자를 모신 사당에서 봄철에 이뤄지는 행사라는 의미네요. 경학원이라는 장소는 검색해보니 지금의 성균관을 일제가 개칭한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춘계석전이라는 행사는 지금도 전국 각지의 향교에서 매년 봄마다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봄에 공자에게 예를 갖춰 행사를 여는 것을 춘계석전, 가을에 하는 행사를 추계석전이라고 합니다. 신문에 실린 행사 모습은 사실 지금도 전국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유학자와 유교도들이 도포를 입고 모여 공자를 모신 사당에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 말입니다. 석전대제 또는 춘계석전, 추계석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시면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중년과 노년의 남성들로만 이뤄진 이 행사는 이제 신문 지면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행사는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사진기자들이 더 이상 촬영하지도 않고 지면에도 싣지 않는 것이죠. 대신 화려한 공연 모습이 신문에 실립니다.

▶ 신문 사진의 목적은 현장에 가지 않는 독자들을 대신해서 현장을 보여주는 역할일 겁니다. 그런데 신문기자들과 신문 독자들이 전통 행사에 시선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최측에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겁니다. 최근 10년 아니 20년 간 신문에 실리는 춘계석전대제 기사에는 행사 시작 전 열리는 팔일무 공연 사진이 게재됩니다. 전통 아악에 맞추어 악생 64명이 한 줄에 여덟 명씨 여덟 줄로 정렬하여 추는 춤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악생(樂生)은 국악 또는 무용을 전공하는 여학생들입니다. 빨간 옷을 입고 추는 팔일무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100년 전 춘계석전에서도 학생들이 참관하고 일무 공연이 펼쳐졌다곤 하는데 사진은 중노년의 유생들의 실제 행사 장면을 골랐던 것 같습니다. 형식보다는 본질에 집중해서 사진을 찍고 골랐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사진 속 장면은 지금도 봄과 가을에 열리는 석전대제 현장에 가면 볼 수 있고 사진으로 찍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장면이 신문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요? 독자들이 좋아할까요? 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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