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광화문사옥에서 1일 만난 극작가 배삼식(53)은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출간된 그의 희곡 그림책 ‘훨훨 올라간다(비룡소)’는 25년간 번역극과 창작극, 마당놀이 등 영역을 넘나들며 각종 희곡상을 휩쓴 그가 처음으로 펴낸 어린이용 희곡이다. “초장부터 아이들이 노래하며 노는 극을 구상했다”는 그의 말은 때론 세찬 여울처럼, 때론 적막한 호수처럼 흘렀다.

국내를 대표하는 극작가지만 어린이용 책은 도전이었다. 쉽고 분명하면서도 울림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 그는 “좋은 어린이 책은 시적(詩的)이어야 하기에 까다로웠다”며 “북유럽 작가인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등의 동화책을 읽으며 존경을 느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개의 단어를 품은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르는 배삼식의 스타일은 간결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용 책을 쓸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책 속엔 “나무들은 푸른 이불 잠든 산을 덮어주네” 등 직관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함의를 품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는 “산도, 거기 사는 동물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환경, 역사 등 깊은 주제를 ‘아이들은 이해 못 한다’며 모조리 표백하기보단 아이들이 넌지시 감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술래잡기, 말뚝박기 등 장난감은 ‘서로의 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부대끼는 경험이 적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를 흉내 내면서 자기 자신을 인식해요. 위험한 발상일 수 있지만 문학이라는 안전장치 속에서 (아이들이) 인생의 잔혹동화를 미리 경험하고 단단해질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앞으로는 오페라나 노래 가사 등 음악적 글쓰기에 더욱 집중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물결처럼 출렁이는 판소리 사설(辭說)을 읽거나 술집 등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대화를 들으며 생생한 단어를 꾸준히 수집한다”며 “살아있는 우리말 보물창고”라고 웃었다. 이번 작품은 작곡가와 협의를 거쳐 1년 후 노래극으로 무대에 올린다는 계획이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기념 창작 오페라도 이르면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무대를 꾸리고 싶어요. 산간지역을 포함한 전국 학교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지윤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