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축 늘어진 말의 시체…‘바나나 작가’ 카텔란의 독한 농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일 12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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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막한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전시 전경. 말을 박제한 작품 ‘노베첸토’와 뒤편으로 비둘기를 박제한 작품 ‘유령’이 보인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농담꾼’(prankster)
이탈리아 출신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에겐 늘 이 수식어가 붙는다. 미술관에 18K 금 103kg으로 만든 변기 작품(‘아메리카’)을 설치하고, 아트페어에는 생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인 작품(‘코미디언’)을 내놓으니 그 별명은 작가가 자초한 것이다.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관객이 작품 속 바나나를 먹어 치운 것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 카텔란이 한국을 찾았다.
● 죽음과 냉소가 가득한 전시장


시신 9구가 누워 있는 듯한 대리석 조각 작품 ‘모두’가 보이는 전시 전경.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사진 김경태
시신 9구가 누워 있는 듯한 대리석 조각 작품 ‘모두’가 보이는 전시 전경.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사진 김경태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한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WE’에서도 농담꾼의 면모를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전시를 보기 위해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노숙자와 비둘기가 관객을 맞이한다.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든 설치 작품 ‘동훈과 준호’와 비둘기를 박제한 작품 ‘유령’이다.

주 전시장인 M2관으로 입장하면 허공에 축 늘어진 말의 사체가 시선을 잡아끈다. 1997년 작품인 ‘노베첸토’는 이탈리아 투린 리볼리성 미술관의 바로크 건물에 처음 전시됐다. 당시 고풍스러운 건축 천장에 매달린 말의 모습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말은 리움미술관으로 이동해 죽음과 냉소의 기운을 퍼뜨리고 있다.

운석에 맞은 교황을 표현한 작품 ‘아홉 번째 시간’, 1999년.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사진 김경태
운석에 맞은 교황을 표현한 작품 ‘아홉 번째 시간’, 1999년.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사진 김경태

이 분위기는 전시장 2층에서 극대화된다. 이곳에는 붉은 카펫 위에 천으로 덮인 시신의 모습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 ‘모두’가 줄지어 누워 있다. 그 옆에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 모형으로 제작한 ‘무제’와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아홉 번째 시간’이 전시됐다.

카텔란의 2019년 작품 ‘코미디언’.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사진 김경태
카텔란의 2019년 작품 ‘코미디언’.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사진 김경태

카텔란의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을 선보이는 전시는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다. 유명한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은 이번 전시의 메인이 아니라는 듯 2층 뒤편 공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전시됐다. 다만 늘 그렇듯 생바나나가 전시됐기에, 갈변할 때마다 미술관에서 새 바나나로 교체해준다.
● 다다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그’ .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그’ .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작가의 30년 경력에서 선별한 주요 작품을 통해, 모두가 불편해하고 꺼리는 주제를 굳이 전면으로 끄집어 낸 카텔란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다. 교황을 소재로 한 작품이나, 미국 성조기에 총을 쏴서 구멍을 낸 작품 ‘밤’(2021년), 히틀러를 소재로 한 ‘그’(2001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이력의 첫 출발이 되는 작품은 미술관 로비에 있다. 티켓 부스 왼쪽에 설치된 벽 광고판이 사실은 그의 작품 ‘일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전시에 초청된 카텔란이 작품을 걸지 않고 대신 그 공간을 광고용으로 판매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향수 브랜드의 광고가 걸렸다고 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사진 제공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사진 제공 리움미술관

미술관에서 흔히 기대할 수 없는 도발과 장난을 일삼는 카텔란을 보면, 변기를 전시해 충격을 준 마르셀 뒤샹(1887~1968)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100년 전 작품인 뒤샹의 ‘샘’(1917년)은 제1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허무를 담고 있었지만, 카텔란의 냉소와 농담이 시대와 역사와 어떤 연결고리를 맺을지는 생존 작가인 만큼 아직 물음표로 남아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온 작가”라며 “카텔란의 희극적 장치가 작동되는 작품을 통해 토론이 펼쳐지는 무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16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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