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다리소반에… 저녁 밥상 차리는 시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21일 1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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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인문학’ 펴낸 오인태 시인



오인태 시인(60)은 저녁이면 손수 밥상을 차린다. 씨감자를 쪼개 넣고, 바지락을 듬뿍 넣은 뒤 쑥을 올리면 밥 한 그릇은 뚝딱 비울 수 있는 바지락감자쑥국 완성. 따끈따끈한 밥과 함께 두릅을 데쳐 초장에 찍어 먹으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어쩐지 오 시인은 밥상 앞에서 울컥 목이 멘다. 씨감자가 귀했던 어린시절 보릿고개도 생각나고,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서글퍼서다. 그럴 때 마다 오 시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밥상 사진을 찍어 올리며 글을 썼다. 오늘 나는 이렇게 밥상을 차려먹었다고, 떨어져있더라도 함께 밥을 먹는 것처럼 살아가자고.



최근 에세이 ‘밥상머리 인문학’(궁편책)을 펴낸 오 시인은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떨어져있는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2012년부터 SNS에 저녁 밥상을 찍어 올렸다”고 했다. 그는 1991년 등단한 시인이자 36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 장학사로 일한 교육자다.

“교사라는 직업 때문에 경남 거창군, 남해군, 하동군, 진주시 등 홀로 떠돌이 생활을 많이 했어요. 덕분에 여러 고장의 제철음식을 맛보고 차려먹게 됐죠. 한국 사람들이 인사말로 ‘밥이나 먹자’고 하듯 음식을 차리곤 친구들에게 같이 밥 먹자 해보고 싶었습니다.”



신작엔 그가 2012년부터 쓴 수백 개의 밥상 중 52개 밥상과 이에 대한 단상이 담겼다. 그는 결을 살려 찢은 송이를 넉넉히 넣어 송잇국을 끓이곤 호박잎으로 겹겹이 싸서 송이를 구워주던 아버지의 사랑을 회고한다. 멸치를 우려 낸 뒤 다진 마늘, 쪽파, 통깨, 고춧가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올린 잔치국수를 차려낸 뒤 잔치국수 먹는 날이 잔칫날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개다리소반 위에 밥, 반찬, 국 한 그릇만 올린 밥상을 보다보면 오 시인의 진솔한 마음이 전해진다.

“혼자 밥상을 차리다보면 들에서 일하다 돌아와 앞치마를 두르고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생각나요.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사랑을, 인생을 배웠죠. 함께 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옛날처럼 밥상을 매개로 공동체 의식도 되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전교생이 35명에 불과한 경남 하동군 묵계초 교장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다시 밥상을 꺼내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가장 좋은 교육방법은 밥을 차려주고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다른 것이 아니라 아침밥부터 챙겨주세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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