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실용’ 다 잡은 공공디자인, 일상 속으로 스며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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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아이디어 공모전 수상작 눈길
‘시민쉼터 변신 지하철 환풍구’ 대상, 공기정화필터 달아 화단-벤치 조성
시각장애인용 팔각점자 보도블록, 올 7월 시범적용 호평… 확대 검토
“공공디자인 적용 전국 66곳 소개”

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가끔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보도 한쪽을 커다랗게 차지한 지하철 환풍구. 가뜩이나 불쾌한 공기에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어린아이라도 무심코 올라가는 광경을 보면 다들 화들짝 놀란다. 안전도 우려되고 보기에도 우중충한 이 설치물. 어떻게 바꿀 방법이 없을까.

‘지하철 환풍구를 활용한 도심 속 무더위 쉼터’ 이미지.
‘지하철 환풍구를 활용한 도심 속 무더위 쉼터’ 이미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이 공동 주최한 ‘제3회 공공디자인 국민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작품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지하철 환풍구를 활용한 도심 속 무더위 쉼터’로 대상을 받은 박성민, 조재민 씨는 “환풍구를 시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방법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환풍구 내부에 공기정화필터를 달아 배출하는 공기를 깨끗하게 바꾸고, 외부에는 벤치와 생태화단을 설치해 누구나 기분 좋게 이용하도록 만들자는 디자인이다. 심사위원들도 “환경적인 측면도 잘 살려 사람과 공생을 유도하는 복합형 공공시설물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최근 공공디자인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공공디자인은 말 그대로 공공성과 미적 감각을 동시에 살린 디자인을 일컫는다. 한마디로 ‘보기도 좋고 쓰기도 좋게’ 만들자는 뜻. 요즘엔 공공디자인을 실제 이용하는 시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결과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시각장애인에게 여덟 개 방향을 알려주는 ‘팔각점자형 보도블록’.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시각장애인에게 여덟 개 방향을 알려주는 ‘팔각점자형 보도블록’.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지난해 공모전 대상작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팔각점자형 보도블록’은 올 7월 시범 적용해 확장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에 사각형이던 점자블록을 팔각형으로 바꾸는 비교적 간단한 아이디어지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각형은 네 방향만 가리키지만 팔각형은 여덟 개 방향을 알려줘 시각장애인이 방향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공진원 측은 “교통 표지판, 화장실 안내 등에도 공공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다”며 “시민 참여는 공공디자인이 추구하는 공공 가치를 지향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2’ 개막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전시 관계자들이 시소 전시물 ‘동글동글동글’을 타고 있다. ‘서로서로놀이터’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함께 노는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뉴스1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2’ 개막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전시 관계자들이 시소 전시물 ‘동글동글동글’을 타고 있다. ‘서로서로놀이터’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함께 노는 즐거움을 맛보게 했다. 뉴스1
올해 처음 개최된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2022’에서는 공공디자인의 가능성을 알리고 있다.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5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길몸삶터―일상에서 누리는 널리 이로운 디자인’ 전시장의 메인 홀은 둥글게 만든 시소 ‘동글동글동글’을 중심으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터로 꾸몄다. 공진원은 “놀이터나 시장 등 일상적인 공간이 공공디자인과 만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며 “실제 전국에서 공공디자인이 적용된 66곳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신호 기다리며 쉴 수 있게 신호등에 부착한 장수의자.
신호 기다리며 쉴 수 있게 신호등에 부착한 장수의자.
치매 예방에 도움 되는 운동기구들을 예쁜 어린이놀이터처럼 만든 ‘인천 남동구 간석동 노인종합문화회관 광장’, 도시 미관을 해쳤던 장소를 알록달록한 복합생활문화시설로 변모시킨 ‘부산 수영고가도로 비콘그라운드’가 대표적이다. 다리가 불편한 노년층이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앉아 쉴 수 있도록 신호등에 부착한 깜찍한 간의의자인 ‘장수 의자’는 경기 남양주시와 포천시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 70여 곳에 설치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 관련 기관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길형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 명예회장은 “디자인이 이미 미술을 넘어 사회적 개념으로 확장돼 환경, 인권 등 시대적 요구와 이어지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공공디자인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공공디자인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국민 아이디어 공모전#수상작#시민쉼터 변신 지하철 환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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