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소비자 조종하는 그들의 ‘큰 그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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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트랩/윤재영 지음/352쪽·1만6800원·김영사

‘한 달 무료 이벤트.’ 웬만하면 살면서 이런 말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다. 또 이런 이벤트에 혹해 넘어갔다가, 나중에 해지하려 해도 너무 방법이 험난해 애먹는 일도 꽤나 많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지쳐 나가떨어져 해지를 포기하기도 한다. 해지라는 목적지에 겨우 다다랐던 이라도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서비스 혜택을 자꾸만 보여주는 바람에 마지막 해지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인 저자는 이처럼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에서 접하는 사용자를 기만하는 디자인을 ‘디자인 트랩’이라 부른다. 여기서 지칭하는 디자인이란 유비쿼터스 환경을 이용자가 보다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된 전반사항을 설계하는 모든 행위를 포괄한다.

저자는 우리가 가짜뉴스에 쉽게 낚이고 수많은 구독 서비스를 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디자인 함정(트랩) 때문이라고 봤다. 우리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함정 자체가 딱 빠지기 좋게 설계된 탓이다. 이 책은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실제 마케팅 사례를 통해 우리의 선택을 조종하는 디자인 트랩의 숨은 설계와 원리를 세세하게 안내한다.

현대인들의 소셜미디어 중독을 이끄는 대표적인 디자인은 ‘자동 재생’이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한 영상이 끝나면 다음 영상이 자동 재생된다. 이는 단순히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기능이 아니란다. 동영상 광고는 얼마나 오래 시청하는지를 바탕으로 광고비가 책정되는데, 자동 재생 기능 덕에 관련 기업들은 이전보다 20∼50배까지 광고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문제는 자동 재생을 비활성화하는 방법이다. 플랫폼마다 다르고 대부분 찾기가 어렵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은 아예 비활성화를 할 수 없다. 한 발 더 나아가 넷플릭스는 지난해 ‘지금 바로 재생’ 기능을 마련했다. 사용자가 선택을 망설일 때 어떤 영상이든 곧장 시작하게끔 만든다. 이 기능으로 인해 사용자는 더욱 수동적으로 중독적인 시청을 하게 된다.

저자는 21세기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구글이나 애플 등에서는 바람직한 알림 디자인에 대해 고민 중이다. 휴대전화 푸시 알림인 빨간 동그라미 알림은 긴장감과 중독을 동시에 유발한다. 이에 기업들은 중요도를 나눠 알림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안하고도 있다. 기업의 변화만 기다릴 게 아니라 사용자인 우리 역시 ‘옳은 디자인’에 대해 고민해 볼 때가 됐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소비자 조종#큰그림#디자인 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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