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꺼져가는 어머니 손도 못잡아…코로나가 바꾼 호스피스 병동 모습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0일 11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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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1월, 해외에 거주하던 아들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다. 2주 간의 자가격리가 끝나기 전 어머니의 상태가 위독해졌다. 아들은 레벨D(마스크와 전신방호복, 덧신, 라텍스 장갑 및 고글 착용) 방호복을 입은 채 임종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숨이 꺼져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을 수도,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도 없었다. 격리를 마치지 않아 환자를 만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임종실 문은 열어놔야 했고, 문 밖에서 관할 보건소 직원, 감염관리팀 직원, 의료진이 마치 감시하듯 이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코로나 19는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는 것 마저 가로막았다. 서울 노원구 원자력병원에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로 일한 권신영 강동대 간호학과 교수(49)는 전국 각지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 18명을 인터뷰해 코로나 19로 변화한 호스피스 병동의 모습을 담은 ‘그래도 마지막까지 삶을 산다는 것’(클)을 11일 펴냈다. 18일 서울 노원구 카페에서 만난 권 교수는 “호스피스는 죽어가는 곳이 아닌, 죽어가는 과정에서 삶을 살아가는 곳이라고 환자와 가족에게 설명했는데 정작 임종조차 제대로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 마음 아팠다”고 말했다.

현장 간호사들이 입을 모으는 가장 큰 변화는 병원 방문제한이다. 환자의 상주보호자는 1인만 가능해졌고, 면회도 직계가족으로 제한했다. 만날 수 없는 가족이나 지인들과는 영상통화로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했다. 어린 손주 얼굴을 화상 너머라도 보여주면 의식이 없던 환자의 미간이 떨리고 입가에 미소가 띄어지는 걸 보고 간호사들은 ‘이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구나’라는 생각으로 환자를 돌봤다.

“환자에게 가족보다 더 소중한 지인이 있을 수 있어요. 내가 용서하거나 용서받아야 할 대상,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있거든요. 그들과의 만남이 아예 불가능해 진거죠. 호스피스 환자들은 기력이 없기 때문에 유선전화나 화상통화로 제대로 소통하기도 힘들어요. 직접 와서 안아주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죠.”

코로나 19 확진자 치료를 위한 병상이 필요해지자 입원형 호스피스가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전환됐다. 이로인해 기존의 호스피스 입원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올해 1월 기준 입원형 호스피스 88곳 중 21곳이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병원을 옮기라는 지침에 ‘이 병원에서 임종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임종을 빨리 할 수 있느냐’고 물은 보호자도 있었다. 권 교수는 “옮길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던 중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일반병동이나 중환자실에서 임종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책에는 간호사들이 느끼는 무력감도 드러나 있다. 호스피스 간호는 큐어(Cure·치료)가 아닌, 케어(Care·돌봄)가 목적인만큼 환자와, 환자 가족들에게 정서적 버팀목이 돼 주는 것도 중요하다. 코로나 19로 대화와 신체 접촉을 기피하게 되면서 환자, 가족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어려워진 것. 권 교수는 “보호자가 자신을 안으려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친 적이 있어 너무 죄송했다는 간호사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19 이후 호스피스 미래는 어떨까. 권 교수는 ‘가정형 호스피스’의 확산을 들었다. 가정형 호스피스는 의료진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집을 방문해 돌보는 의료서비스다. 코로나 19로 유전자증폭(PCR) 검사 등 입원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아진 것. 권 교수는 “‘반드시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는 공식이 깨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말한다.

“인터뷰한 호스피스 간호사 한 분이 할머니 댁에서 임종을 지켰던 경험을 듣는데 그 과정이 너무 따뜻했어요. 할머니가 평생을 산 시골 온돌방에서 창호지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맞으며, 평소 입었던 한복과 버선 차림을 갖추고 돌아가셨거든요. 가정형 호스피스를 통해 집에서도 평온하게 가족을 보내드릴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된 건 장점이에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간호사들은 호스피스 간호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마스크를 끼고 있는 환자의 표정 변화를 더 잘 읽기 위해 환자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가족이 오지 못해 속상해하면 옆에서 위로해준다. 환자 상태에 변화가 생겼을 때는 코로나 19로 병원에 오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빨리 알려야 하기 때문에 예전엔 ‘가래가 많아졌네’ 정도로 넘겼던 증상도 ‘가래 끓는 소리는 어떻게 변했는지’까지 신경쓴다.

“의료행위의 목적은 환자를 치료해서 병을 낫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가 여생을 잘 마무리하도록 돕는 것도 아주 중요해요. 마치 갓난아이가 칭얼대면 불편한지 살피고 돌아 눕히는 것처럼,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으로 환자들을 더 세심하게 돌보는 게 호스피스 간호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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