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시조, 보디캠 달고보듯 담대”… “K팝, R&B로 호소력 극대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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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K팝 연구로… 美 학계서 주목받는 매캔-앤더슨 교수 인터뷰
‘시조 전도사’ 매캔 명예교수… 1966년 안동에 영어교사로 부임
한국인 교사들 시조창에 매혹돼 싸이에게 시조 접목曲 제안할 것
흑인음악-K팝 비교 앤더슨 교수…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쉬리’까지
K팝은 매우 다층적 문화 콘텐츠, 장기간 美학계 연구과제로 남을것

11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미술관에서 만난 데이비드 매캔 명예교수(왼쪽)가 자신의 시조가 담긴 문예지 ‘부천작가’와 시조집 ‘The Under Story’(2021년)를 들어 보였다. 오른쪽은 화상으로 만난 크리스털 앤더슨 조지메이슨대 교수. 보스턴=임희윤 기자 imi@donga.com·앤더슨 교수 제공
11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미술관에서 만난 데이비드 매캔 명예교수(왼쪽)가 자신의 시조가 담긴 문예지 ‘부천작가’와 시조집 ‘The Under Story’(2021년)를 들어 보였다. 오른쪽은 화상으로 만난 크리스털 앤더슨 조지메이슨대 교수. 보스턴=임희윤 기자 imi@donga.com·앤더슨 교수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과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지금, 미국학계에서는 한국 문화에 대한 연구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그 가운데서도 독특한 시각으로 이름이 난 미국학자 2명이 있다. 1960년대 한국을 처음 방문한 뒤 시조의 매력에 빠져 세계를 오가며 활동해 온 시조 전도사 데이비드 매캔 하버드대 명예교수(언어문화학·전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와 힙합, R&B 같은 흑인음악과 케이팝을 비교 연구해 주목받은 크리스털 앤더슨 미 조지메이슨대 교수(문화학)다. 이들은 “한국 문화가 가진 생동하는 매력은 타 문화와 비교해 독특한 경쟁력을 가졌다. 이에 대한 더 깊이 있고 문화사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매캔 교수를 11일 미국 하버드대 미술관에서 만났다. 앤더슨 교수는 이날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매캔 교수가 한국 문화에 빠진 것은 1966년 경북 안동에 영어교사로 부임하면서부터다.

“하버드대 학생일 때 해외에서 진행하는 의미 있는 ‘커리어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지원했는데 ‘커리어’가 사실은 ‘코리아’였던 거예요.”

한국과의 우연한 만남은 그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각인을 남겼다. 방과 후 읍내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동료 한국인 교사들이 부르던 시조창에 매혹됐다. 비교문학을 연구한 그는 수시로 한미 양국을 오가며 연구와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송강 정철의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등 여러 시조는 마치 저자의 몸에 보디캠이라도 달고 조선의 자연을 보여주듯 그 묘사가 대담합니다. 운율은 거침없고 어조는 통렬하죠.”

하버드대 1학년생들을 가르칠 때 시조의 초장, 중장, 종장 형식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를 제출하게 할 정도로 시조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그는 여러 권의 시조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17세기 영국민요 ‘Barbara Allen’의 곡조에 시조 가사를 붙여 외기도 했고, 직접 우쿨렐레로 지은 멜로디에 시조를 얹는 실험도 했다.

“가수 싸이에게 시조와 케이팝을 접목한 곡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하고 싶어요. 오래됐지만 멋진 운율감을 가진 시조가 오늘날의 젊은이와 호흡하려면 첨단의 리듬과 거침없이 섞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앤더슨 교수는 10여 년 전 케이팝에 빠졌다. 2011년 SM타운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콘서트장을 찾아 무작정 수많은 관객을 설문한 것이 연구의 시작이었다.

“제가 결국 다다른 곳은 1960년대 미국 흑인음악의 중심이었던 모타운 음반사와 인기 그룹 템테이션스였어요.”

복잡한 안무와 수준 높은 노래를 결합한 모타운과 케이팝을 나란히 놓자 그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연구가 시작됐다. ‘케이팝의 가창에는 왜 R&B 창법이 널리 쓰일까’에 생각이 미치자 그 역사적 맥락을 파고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R&B는 비주류였던 흑인의 음악이 백인과 협업해 미국 주류 문화로 진입하는 선상에서 발전했죠. 다양한 대중을 겨냥하며 호소력이 극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앤더슨 교수는 케이팝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비, 빅뱅, 투애니원은 물론 ‘쉬리’나 ‘닌자 어쌔신’ 같은 영화까지 다양한 층위의 콘텐츠를 들여다봐야 미국 주류로 향한 한국 문화의 힘과 흐름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50년대 로큰롤, 1970년대 글램 록 장르에 대한 연구처럼 케이팝 역시 오랫동안 미국학계의 연구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국의 힙합과 케이팝, 언더그라운드와 주류 음악이 공생하는 생태계까지 골고루 주목해야 합니다. 케이팝은 매우 다층적인 문화 콘텐츠이기 때문이죠.”

보스턴=임희윤 기자 imi@donga.com
#k팝#k팝 연구#美 학계 연구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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