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북촌과 서촌에서 찾아보는 근현대 미술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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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황정수 지음/716쪽·4만2000원/푸른역사

경복궁을 사이에 둔 서울 종로구 북촌과 서촌은 옹기종기 모인 갤러리들을 양옆에 두고 걸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네다. 약 100년 전에는 미술가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한국 근대 미술사 연구가인 저자는 오랜 기간 북촌 지역에 거주하면서 많은 미술가의 이야기를 접했다. 북촌 편과 서촌 편으로 나누어진 두 권의 책에서는 각 골목에서 확인한 미술가들의 흔적을 담았다. 화가, 조각가 등 50여 명의 근대 미술가들의 희로애락과 삶,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북촌과 서촌이 조금 달리 보이게 된다.

인사동 일대는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미술 중심지로 부상했다. 조선미술전람회를 주관한 조선총독부와 덕수궁미술관이 인접한 데다 수집가와 후원자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미술품 거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한국예술계 ‘귀인들’을 내놓은 중앙고보와 휘문고보가 1900년대 이 지역에 설립되며 광복 전후 한국 화단을 이끈 김용준, 이쾌대 등을 배출하기도 했다.

저자는 북촌 지역을 산책하며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인물화의 귀재 김은호 등을 떠올린다. 김은호는 그림을 배운 지 21일 만에 순종 어진을 그린 천재 화가다. 그의 제자인 백윤문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열 번 넘게 상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 창작 시기에 공백이 생겼던 화가다. 여덟 살에 장티푸스에 걸려 후천적으로 청각 장애를 갖게 된 김기창도 김은호의 제자다.

서촌 미술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이중섭과 천경자다. 1952년 부인과 아이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이중섭은 머물 곳을 찾아 배회하다 친구들의 부름에 서울로 갔다. 서촌 누상동에서 보낸 1954년 한 해는 그에게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는 전시를 열어 성공하면 일본에서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그림을 그렸고, 이즈음 ‘소’ 등을 전람회에 출품하곤 했다. 천경자도 누하동에 살던 1959년부터 3년간은 가장 여유로운 감성이 흐르던 시절이었다. 서울에 자리를 잡지 못하다 처음 자신의 집을 가지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기 때문이다. ‘서촌 시대’를 기점으로 그의 그림은 낭만적인 화풍을 띠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북촌#서촌#근현대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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