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윤두서가 파격적인 자화상 그린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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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을 놓치지 마/이종수 지음/352쪽·2만 원·학고재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화 전시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추성부도(秋聲賦圖)와 세한도(歲寒圖)다. 단원 김홍도(1745∼1806)가 그린 추성부도는 하얀 달과 앙상한 나무, 흔들리는 낙엽이 어우러져 처연한 느낌을 준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 유배 시절 그린 세한도는 엄동설한 속 소나무와 외딴집이 갈필(渴筆)로 그려졌다. 둘 다 전체적으로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팬데믹 시대를 맞아 인생무상을 새삼 느낀 때문인지 유독 마음에 남았던 듯하다.

이 책 저자는 세한도 속 소나무가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킨 제자를 상징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추사 자신을 투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거친 겨울바람에도 힘찬 가지를 뻗는 소나무를 통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진 거라는 얘기다.

국문과를 나와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는 이 책에서 서양화에 비해 정적으로 인식돼 온 고전 한국화를 운치 있게 해설하고 있다. 제목처럼 그림에서 순간의 장면을 포착해 이에 대한 감상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마치 시를 읽는 듯이 감칠맛 나는 표현이 고루한 미술사 책들과 차별화된다.

밤에 보면 왠지 무서울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그림,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 해석도 눈길을 끈다. 몸통 없이 두툼한 얼굴과 세필(細筆)로 그려진 수염만 등장하는 그림은 그 자체로 파격적이다. 더구나 당시에는 초상화는 자주 그렸어도 자화상은 거의 그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숙종 때 당파 싸움에서 밀려 출사의 기회를 잃은 화가의 상황에 주목한다. 평생 학문과 그림으로 시간을 보낸 윤두서가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의관을 생략한 채 자신의 얼굴과 표정, 눈빛에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인물을 그릴 때 외양뿐 아니라 인격 같은 내면세계까지 담아야 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원칙이 이 작품에서 빛을 발한 게 아닐까.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윤두서#자화상#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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