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한복 입고 담뱃대 물고…독일인이 본 ‘우아한 루저의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0일 14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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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 당당한 체구와 잘생긴 모습의 사람들은 수많은 상점 앞에서 기다란 담뱃대로 흡연하거나 수다를 떠는 등 우아한 루저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1913년 4월 조선에 온 독일 예술사학자 페테르 예쎈(1858~1926)이 쓴 ‘답사기: 조선의 일본인’ 일부다. 예쎈은 당시 독일 문화부 후원으로 문화정책을 구상하고자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조선을 답사했다. 예쎈은 일제에 의해 서양식 복식이 전파되던 와중에도 상의부터 신발까지 온통 흰색 한복을 입는 등 전통문화를 유지하던 조선인을 보고 감명을 받는다.

최근 발간한 ‘우아한 루저의 나라’(정은문고)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조선을 방문한 독일인 3명의 여행기를 번역해 당시 모습과 조선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살펴본다. 예쎈과 지리학자 라우텐자흐 헤르만(1886~1971)의 여행기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자료다. 저자 고혜련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60·한국학)는 2019년 독립기념관의 3·1운동 기념사업 일환으로 독일 내 한국자료를 수집하다 이 자료들을 발견했다.

1898년 2월부터 1899년 6월까지 조선을 방문한 독일 산림청 공무원 브루노 크노헨하우어(1861~1942)가 한국에 대해 강연한 강연문 ‘Korea’에는 당시 독일의 조선 금광 채굴 과정이 그려져 있다. 강원 철원군 당고개 금광에서 채굴작업을 하던 그는 1898년 12월 조선인 광부들에게 기습을 당했다. 돌을 던지는 조선인들에게 그는 권총을 쏘며 대항했다. 고 교수는 “반외세를 내세운 동학농민운동 흔적이 남아있던 당시 조선인은 외국인들이 광물을 탈취한다고 여겼다”고 분석했다.

지리학자로 지구 동쪽 끝 조선 반도 지형을 연구하고자 1933년 7월부터 10월 조선에 온 헤르만의 백두산 탐사기 ‘조선-만주 국경에 있는 백두산의 강도여행’에는 독립군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목격담이 제시된다. 그는 “벨기에식 권총을 소지하고 자신을 사냥꾼이라고 말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고 전한다. 고 교수는 “당시 백두산은 항일무장단체 동북항일연군 주둔지가 있던 지역으로 독립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일제강점기 조선의 실체와 가치를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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