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그램으로 되살린 100년전 광대놀음에 스며들어 보시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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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소춘대유희_백년광대’
무대-영상 아트디렉터 유재헌 대표
BTS 콘서트-김연아 쇼 이어 평창 개회식 맡은 ‘장면술사’
“나는 기억을 만드는 사람… 매뉴얼 벗어나는 게 원칙”

5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배우들이 신작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의 ‘오방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5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배우들이 신작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의 ‘오방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다. 국립정동극장 제공
방탄소년단(BTS)이 2019년 진행한 월드투어 콘서트 ‘Love Yourself: Speak Yourself’. 미국, 유럽, 아시아를 거친 투어는 해외 언론으로부터 “다감각적 경험을 선사했다” “시각적으로 압도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곡 ‘Epiphany’에서 빛과 조형물을 활용해 시공간의 역행을 표현한 장면, ‘Singularity’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듯 왜곡된 공간감을 표현한 무대, ‘Dionysus’에서 12m 대형 표범 동상을 앞세워 빛, 불꽃과 함께 펼친 군무가 압권으로 꼽혔다. 음악, 춤, 영상, 세트가 어우러진 투어에서 명장면을 연출한 이는 ‘장면술사’로 불리는 유재헌 유잠스튜디오 대표(47·사진). BTS에 앞서 서태지, 넬, 비, 싸이, 블랙핑크 콘서트부터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서 화제가 된 ‘인면조 인형’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공연, 전시, 콘서트 등 놀이판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 그가 국립정동극장 신작 ‘소춘대유희_백년광대’의 무대·영상 아트디렉터로 참여한다. 그는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관객이 그저 공연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장면 속으로 스며드는 개념으로 작업했다. 미디어아트 기술을 과하게 부각하지 않으면서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들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신작은 1902년 근대식 극장 원각사(圓覺社)에서 첫 유료공연을 펼친 ‘소춘대유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실감형 콘텐츠다. 팬데믹으로 공연을 올리지 못하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원들 앞에 100년간 공연장을 지킨 백년광대와 오방신(극장신)이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초연 당시에도 ‘호열자(콜레라)’로 공연이 중단돼 팬데믹이 덮친 오늘날 시대상과도 닮았다. 옛 원각사를 계승한 무대가 국립정동극장이기에 의미도 남다르다. 멀티 프로젝션, 매핑, 홀로그램, 딥페이크 등의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 실제 배우들의 연기와 100년 전 옛 광대놀음을 함께 구현한 게 특징이다.

지금까지 대형 미디어아트를 주로 선보인 그는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무대를 맡았다. 그는 “규모는 개별 작품의 특징일 뿐이다.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는 전통 공연이야말로 현대적 표현 방식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스튜디오를 차린 뒤 콘서트를 비롯해 오페라, 무용극, 뮤지컬에 이어 김연아의 아이스쇼 무대까지 진출했다. “예전에는 제 일을 ‘세트 디자인’으로 불렀는데 요즘에는 ‘시닉(scenic·무대장치) 디자인’이라고 합니다. 관객은 시각, 후각, 청각을 구분해 장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한 순간을 기억하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기억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대표는 상품성보다 경험을 우위에 두고 창작한다. 그는 “BTS는 팬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그룹”이라며 “그만큼 팬덤과 아티스트의 교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팬의 경험에 집중해 작품을 연출한다”고 설명했다. 온갖 장르를 섭렵한 그가 고수하는 원칙이 하나 있다. 매뉴얼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해왔던 매뉴얼이 아닌 매번 새로운 시도가 필요해요. 제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사실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늘 모든 감각과 시야를 열고 고민할 뿐입니다.”

22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전석 4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홀로그램#광대놀음#소춘대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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