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백야 빛낼 ‘마린스키의 별’ 김기민 “韓 무용수로서 이름 빛낼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6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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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발레의 별이 러시아의 백야를 빛낸다. 세계 정상급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29·사진)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18일(현지시간) 그의 이름을 딴 단독 무대에 오른다. 이 극장 최대 축제로 꼽히는 ‘백야의 별들’에서 그의 공연이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게 됐다.

김기민은 1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 이름을 걸고 역사적인 극장에서 공연한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아 심장이 매일 쿵쾅댄다”며 기뻐했다. 이어 “지난해 팬데믹으로 전 세계 공연장이 멈췄고 올해도 많은 무용수, 예술인들이 고통 받았다. 2주에 한 번씩 유전자증폭검사(PCR)를 받는 과정에서 공연 전날이나 당일에도 접촉자가 생기거나 환자가 발생하면 캐스팅이 바뀌는 것도 일상”이라고 했다. “소중한 무대인만큼 체력적, 정신적으로 집중해 한국 무용수로서 이름을 빛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창립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무용수 이름을 내건 단독 공연은 흔치 않다. 하루에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본인이 직접 꾸며야하는데다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기에 실력은 기본. 넓은 극장 좌석을 모두 채울 수 있는 티켓 파워까지 겸비한 무용수만이 이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는 2년 전에 이어 두 번째로 이 무대의 기회를 잡았다. ‘마린스키의 얼굴’로 최고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2011년 동양인 최초로 이 발레단에 퍼스트 솔리스트로 입단해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다시 한 번 찾아온 단독 무대를 앞둔 그는 “러시아는 지난해 팬데믹을 겪은 뒤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발레 공연을 재개했다. 상황에 따라 객석 수용인원을 25%, 50%, 75%로 조정하면서 공연을 진행해왔고 덕분에 여러 무대에 꾸준히 오르며 체력, 정신력을 꾸준히 관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기민은 이번 공연에서 극장의 여러 파트너들과 함께 작품을 꾸민다. 독무를 포함해 총 5개의 단편 작품을 준비했다. 공연 1막에서 김기민은 발레계 아카데미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2016년 수상할 당시 선보인 발레 ‘라 바야데르’ 2막을 펼친다. 2막에서는 차이콥스키 파드되와 신영준의 안무작 ‘새드니스’의 독무를 춘다. 이어 마린스키 최고의 발레리나 빅토리야 테료시키나와 호흡을 맞추는 프랑스 현대 발레 ‘르 팍(Le Parc)’도 선보인다. 3막에서는 김기민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랑의 전설’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고전 발레부터 맨발로 춤추는 현대 발레까지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제 춤을 꼽았어요. 한 가지 배역만 3시간씩 연기하는 발레와 달리 5개 배역을 한 번에 맡는 건 언제나 큰 도전이죠.”

여러 작품에 동시에 임하는 그는 “제 춤을 본 관객이 제가 출연했던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해선 절대 안 된다. 그 지점을 가장 경계한다”는 평소 지론을 강조했다. 이어 “작품마다 맞는 춤의 스타일이 있다. 이번에는 5개 작품이 갖는 뚜렷한 특징을 표현하면서 김기민만이 가진 색을 함께 보여주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 발레 공부에 몰두한 그는 틈 날 때마다 ‘기본’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단다. 오래된 사진, 비디오, 문헌을 찾아보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러시아에는 발레 관련 자료가 정말 무궁무진해서 공부하기 좋다. 춤이 여러 무용수를 거치고 시간이 흐르면서 원형은 자연스럽게 변질된다. 결국 가장 기초로 돌아가 어떻게 안무된 작품인지, 작품엔 어떤 철학이 담겼는지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부단한 노력으로 세계 정상을 유지하는 그는 개성이 뚜렷한 무용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같은 춤을 추더라도 더 눈길이 가는, 모든 춤에서 김기민의 향이 짙게 묻어나는 춤을 추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제는 제 춤의 개성을 숨기기보다 더 강하게 끌어내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어요.”

한국인으로서 10년 째 러시아 무대를 빛내고 있는 그의 정신적 동력 중 하나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다. 올 초 팬데믹으로 국내 관객과 만날 기회가 무산된 아쉬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러시아를 비롯해 해외 각국 관객들이 제게 많은 관심을 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저는 러시아에서 춤추는 한국인 무용수입니다. 한국인이라는 걸 평생 잊지 않고 춤춰왔어요. 제 노력이 관객에게 전달된다면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도 커지지 않을까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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