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흐가 같은 구도 그림을 3장 그린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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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명화를 읽는 시간/기무라 다이지 지음·최지영 옮김/300쪽·1만6500원·북라이프

빈센트 반 고흐가 프랑스 아를의 자기 방을 세 가지 버전으로 그린 작품들. 위로부터 시카고미술관(1889년),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1888년), 오르세미술관(1889년) 소장본. 시카고 미술관 제공.
‘작은 새장 같은 방은 먼지 때문에 누렇게 퇴색한 벽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 보기에도 초라했다.’

오래전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노란색 작은 방’이다. 작가의 방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만 따라가도 갑갑함이 느껴진다. 세상과 단절된 채 이곳에 틀어박힌 라스콜리니코프의 강박적 심리를 오롯이 보여준다. 심리적 압박과 범죄로의 일탈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이만한 묘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14세기 이후 유럽의 명화(名畵)들을 다양한 반전 요소들을 통해 재해석한 서양미술 입문서다. 이 중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 시리즈는 ‘죄와 벌’처럼 작가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된 방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고흐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 머문 프랑스 아를의 자기 방을 거의 같은 구도로 3장 그렸다. 방 안 가구나 물건들도 거의 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런데 세 작품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벽지와 바닥, 사물의 색상이 모두 달라서다. 1889년작 오르세미술관 소장본은 벽지가 온통 보라색이라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감상자에 따라서는 광인(狂人)의 시선마저 느껴진다. 반면 직전 해에 그린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 소장본은 전체적으로 옐로 톤으로 그려져 안정감을 준다. 롤러코스터처럼 급변했던 고흐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 그림을 ‘풍경에 숨은 반전’으로 꼽으면서 “고흐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 대상에 얽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나타내고자 마음먹었다”고 썼다.

스칼릿 조핸슨 주연의 2003년작 영화로 유명해진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영화도 그렇지만 이 그림을 감상한 이들은 순수와 요염미를 동시에 가진 한 소녀를 연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그림이 초상화가 아닌 트로니(tronie·역사화 등 대작을 그리기 전 캐릭터 연구를 위한 밑그림)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 아름다운 소녀는 실제 인물과 다르다는 것. 어쩌면 그래서 이 그림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고흐#그림#세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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