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네온 선율은 애절하고 정열적… 한국인 심성에 딱 맞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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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네온 연주 거장 J P 호프레
탱고 반주로 예술적 감성 충만… 세계적 음악가와 협연경력 쟁쟁
한국여성과 결혼후 양평에 둥지… 반도네온 교습생에 격려 메시지
“늦었다 생각할때가 가장 빠른 법”

반도네온의 거장으로 통하는 아르헨티나 출신 J P 호프레 씨는 “음을 내는 버튼(키)을 외우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반도네온의 거장으로 통하는 아르헨티나 출신 J P 호프레 씨는 “음을 내는 버튼(키)을 외우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뉴욕타임스 예술면에 소개된 J P 호프레 씨의 반도네온 기사.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 예술면에 소개된 J P 호프레 씨의 반도네온 기사.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호텔 격리가 힘들지 않느냐고요? 전혀 고생이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이름도 생소한 악기 반도네온의 젊은 거장 J P 호프레 씨(38)는 5월 경기 양평 집을 나서 헝가리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다. 해외여행이니 자가 격리를 거쳐야 하지만 반도네온을 사랑하는 청중을 만날 기대감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고 한다. 그는 헝가리 예술의전당 격인 벨러버르토크 콘서트홀에서 국립필하모니관현악단의 반주에 맞춰 유명 첼리스트 바르더이 이슈트반과 반도네온-첼로 이중주를 펼친다. 팬데믹 와중에도 방역수칙을 준수해가며 호프레 씨를 찾는 공연은 적지 않다. 반도네온이 큰 인기를 누리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탱고 열풍이 불면서 최근 몇 년 사이 팬이 크게 늘었다. 독일의 교회 악기로 출발한 반도네온은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탱고 춤의 반주 악기로 꽃을 피웠다. 그 역시 집에서 할머니가 하루 종일 켜놓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탱고 음악을 듣고 자랐다. 음악에 소질이 많던 그는 10대 후반 국립예술상을 수상하고 20세 때 자신의 재능으로 승부하겠다는 꿈을 안고 뉴욕으로 건너가 반도네온 연주가로 명성을 쌓았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번지자 지난해 5월 짐을 싸들고 한국에 와 양평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인 아내와 세 살배기 딸과 함께.

그의 재능은 해외에서 먼저 주목했다. 한 번도 등장하기 힘들다는 뉴욕타임스 예술면에 수차례 소개돼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은 호프레에 의해 예술적으로 승화됐다”는 평을 들었다. 호프레 씨가 지난해 미국을 떠나기 전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 입국 예정을 알리자 한국의 반도네온 애호가들로부터 교습 요청이 줄을 이었다.

KAIST 출신의 대표적인 국내 여성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씨도 그로부터 교습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요청이 들어와 원격화상 레슨을 진행하고 있다. 클래식 작곡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는 하루 24시간이 바쁜 음악인이다.

호프레 씨는 한국에서 반도네온이 사랑 받는 이유에 대해 “정열적이면서 애절한 선율, 풍부하고 우렁찬 음색이 한국인들의 심성과 잘 맞는 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보자가 취미용으로 도전하기에는 쉽지 않은 악기”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 장소에 반도네온을 가지고 나온 그는 직접 연주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가운데 주름상자가 있고 왼쪽에 33개, 오른쪽에 38개의 버튼이 있다. 버튼만으로도 복잡한데 동시에 주름상자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주름을 얼마나 열고 닫느냐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탱고의 전설’로 불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가 “악마의 악기”라고 불렀을 정도다. 반도네온 가격은 대당 4000∼8000달러(약 450만∼900만 원) 정도다.

호프레 씨는 요즘 많은 한국 예술가들이 공연 장소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컴포트존(안전지대)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기회에 도전해볼 것”을 권했다. 그 자신도 세계 각국의 예술단체 및 연주자들과 글로벌 협업 기회를 발굴하려고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뉴욕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공동으로 동영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공연 경력으로 꽉 찬 이력서에서 강연 활동이 이례적으로 눈에 띈다. 글로벌 강연 무대인 ‘TED 토크스’와 ‘구글 토크스’에 연사로 출연했다. 연사로서는 어떤 메시지를 청중에게 선사했을까.

“제가 반도네온으로 진로를 정한 것은 스무 살이 됐을 때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늦었다’고 했죠.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반도네온#연주#j p 호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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