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태, 울음, 절규, 70대 나훈아 여전했다… “묘하게 마력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4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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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나훈아(본명 최홍기·73)가 15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와 추석연휴를 하얗게 태워버렸다.

지난달 30일 방영한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시청률 29%(이하 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미공개 영상을 추가한 이달 3일 재방송의 시청률도 18.7%에 달하며 연휴 화제를 주도했다. 종전 나훈아의 마지막 TV 출연은 2005년 9월 MBC TV 광복 60주년 특별기획 ‘나훈아의 아리수’였다.

나훈아를 오랜만에 보는 중장년층 사이에는 ‘여전히 저렇게 할 수 있다니’라는 감탄이, 그를 처음 접하는 젊은 층에게는 ‘묘하게 마력적’이란 키워드가 연휴 내내 온·오프라인 입방아에 맴돌았다.

나훈아다운 블록버스터 쇼였다. 이번 방송에서 나훈아는 교태, 울음, 절규를 오가는 특유의 능란한 가창으로 청자를 쥐락펴락했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 연출, 다채로운 표정 연기로 뿜는 카리스마도 그다웠다. 다만 코로나19 장기화 탓에 야외 콘서트를 포기해 종전의 나훈아 대형 콘서트에서 볼 수 있던 장쾌한 연출 미학은 줄었다. 객석은 실제 관객 대신 사전 응모로 받은 온라인 관객 1000명의 응원 화면으로 채웠다. 서울, 제주는 물론 일본, 호주, 짐바브웨 등에 사는 팬들이 화면 앞에서 ‘나훈아!’를 연호했다.

나훈아는 긴 백발에 꽁지머리를 하고 ‘고향으로 가는 배’를 부르며 등장했다. 무대 위를 미끄러지는 대형 배 모형에 올라타고서다. 남성합창단의 저음 반복구를 기타 리프처럼 활용해 장중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2005년 서울 노들섬 특설무대에 백마 탄 장군의 형상으로 출현해 모형 거북선에 올라타 전진했던 스케일을 중극장 규모의 KBS홀에서 구현할 수는 없었다. 영상 오버랩 기법을 활용해 현장감을 보완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음악적 욕심도 여전했다. ‘명자!’와 ‘홍시’에서는 싱어송라이터 하림이 하모니카를, ‘사모’에서는 진보라가 피아노를 연주했고, ‘사랑’에서는 하프 전주를 활용해 퀸의 ‘Love of My Life’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체로 트로트풍 원곡과 융화했지만 ‘아담과 이브처럼’에서 군조의 하드코어 랩은 따로 노는 듯 이질감이 느껴졌다. 언플러그드 무대에서는 나훈아가 직접 통기타를 치며 ‘갈무리’ ‘비나리’ ‘영영’을 소화했다.

‘잡초’에서 전통문화를 대거 활용한 점은 인상적이었다. 오고무, 줄타기, 북청사자놀음으로 흥을 돋운 뒤 나훈아가 직접 북을 때리며 노래했고 농악의 가사를 ‘코로나가 별거더냐/대한민국 어게인!’으로 변형해 끝맺었다. ‘딱 한번 인생’에서는 부채춤이 등장했다.

나훈아의 헤비메탈 사랑은 이번에도 이어졌다. ‘사내’에서 메탈 밴드 ‘메써드’가 연주를 맡은 것. 뜨거운 화염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홀라당 타버리는 컴퓨터그래픽을 삽입했다. 2001년 추석특집 공연 때 밴드 ‘디아블로’와 함께한 ‘찻집의 고독’에 비하면 메탈 기타 사운드가 작게 설정돼 충격 효과는 덜했다.

첫 방송 시청률이 높게 나오자 KBS는 3일 재방송을 앞두고 미공개 독점 비하인드 영상을 추가했다고 홍보했으나 정작 새로 추가된 분량은 적었다.

정치권에선 공연 중 그의 소신 발언이 화제를 불렀다.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KBS는 (중략)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정말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 등의 멘트는 정치권 일각에서 소신 발언으로 해석돼 온라인을 달궜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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