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0.01초 빠른 반응이 ‘명품’을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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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웨이 만들기/제임스 배런 지음·이석호 옮김/436쪽·2만2000원·프란츠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는 액션 부품만 4752개가 들어간다. 전통과 단계적 혁신, 기술적 수월성을 향한 장인정신의 결정체다. 사진 출처 pixabay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는 액션 부품만 4752개가 들어간다. 전통과 단계적 혁신, 기술적 수월성을 향한 장인정신의 결정체다. 사진 출처 pixabay
“피아노는 단 세 가지다. 대부분의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소리를 닮으려 노력한다. 일부만 스타인웨이와 다른 개성을 부각한다. 그리고 세 번째, 스타인웨이가 있다. 내게 앞의 두 가지는 ‘스타인웨이가 아닐’ 뿐이다.”

해외 유명 피아니스트가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다. 전국 연주를 다니는 국내 피아니스트는 “공연할 곳에 스타인웨이가 없다면 머리가 복잡해져요.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되죠”라고 말했다. 이 악기는 어떻게 독보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을까. 뉴욕타임스 기자인 저자는 뉴욕의 스타인웨이 공장을 찾아 피아노 ‘한 대’의 제작과정을 따라간다.

현대 피아노의 대명사인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 모델은 길이 273cm. 1890년대 이후 기본 사양은 같다. 단풍나무판을 겹겹이 붙인 합판을 물결 모양으로 구부리는 작업으로 공정이 시작된다. 하루 한 대가량 출고되며, 제조에 꼬박 일 년이 걸린다,

작은 목재 부품은 크기 허용 오차가 0.07mm다. 그래도 악기마다 소리의 개성이 제각각이다. 이유가 뭘까. 240×150cm의 널찍한 가문비나무판 단 한 장으로 만드는 ‘공명판’이 그 비밀 중 하나다. 작은 옹이나 뒤틀림도 없이 결이 곧아야 하지만 나무마다 그 울림이 같기란 불가능하다.

스타인웨이는 1850년 독일 악기장인 하인리히 슈타인베크와 아들들이 미국에 이민 오며 시작되었다. 아들 중 윌리엄은 악기 지식 못지않게 마케팅에도 달인이었다. ‘적당한 가격에 만나는 최고급 피아노’라는 문구로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만찬을 곁들인 화려한 시연회를 열었다. 옛 스타인웨이홀은 카네기홀 개관 이전 뉴욕 공연계의 중심이었다. 미국 곳곳의 박람회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까지 찾아다니며 ‘공작’을 펼쳤고 금상을 휩쓸었다. 장남 테오도어는 독일로 다시 건너가 두 가지 스타인웨이가 뉴욕과 함부르크에서 생산된다.

피아노 기술의 핵심은 건반과 현을 때리는 ‘해머’를 연결하는 ‘액션’이다. 손끝의 강약을 정확히 현에 전달하고, 현을 때린 즉시 해머는 제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 건반 하나의 액션 부품만 54개. 88개 현을 곱하면 4752개나 된다. 스타인웨이 액션의 개성을 결정한 인물은 ‘빠르고 반응력 좋은’ 소리를 선호했던 전설적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였다. 스타인웨이의 기술진은 1920년대 그의 요구에 맞추느라 심혈을 기울였고 단 100분의 1초가 빨라졌다. 그러나 차이는 결정적이었다.

스타인웨이의 역사를 따라가면 피아노 자체의 역사도 보인다. 올해 300세를 맞은 역사상 최초의 피아노를 비롯해 베토벤이 애용한 브로드우드, 쇼팽이 사랑한 에라르, 스타인웨이의 강력한 경쟁자였으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치커링 등 브랜드가 책 곳곳을 누빈다.

저자가 제작 전 과정을 지켜본 ‘제작번호 K0862’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는 ‘C 60’이라는 새 이름을 얻고 스타인웨이의 콘서트 대여용 피아노가 된다. 데뷔 무대에선 ‘약간 밝고 뻣뻣하다’는 평을 얻었지만, 2년 뒤에는 모든 피아니스트가 만족하는 완숙한 악기로 길든다.

책을 접은 뒤 아쉬움은 하나였다. 기자는 영상매체가 가진 정보량의 한계를 알고 문자매체의 장점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콘텐츠는 다큐멘터리 영상물로 접할 때 더 세밀하게 다가올 듯했다. 원제 ‘Piano: The Making of a Steinway Concert Grand’(2006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스타인웨이 만들기#제임스 배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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