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 이제 변방이 아닌 ‘또 다른 천하’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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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SF 작가입니다’ 낸 배명훈

인물보다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학문인 국제정치학이 배명훈 작가를 SF의 세상으로 이끌었다. 2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선 배 작가가 지향하는 것은 경이로움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인물보다 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학문인 국제정치학이 배명훈 작가를 SF의 세상으로 이끌었다. 2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선 배 작가가 지향하는 것은 경이로움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작가 배명훈(42)의 첫 에세이집 ‘SF 작가입니다’(문학과지성사)는 한국SF(과학소설)의 독립선언서다. 지난달 말 출간된 이 책은 ‘안과 밖’에서 SF 장르의 홀로서기를 공언한다.

안으로는 순문학 중심의 기성 문단이 SF를 주류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자신감이고, 밖으로는 미국 중심의 ‘SF 세계’에서 한국 SF를 변방이 아닌 또 다른 ‘천하’로 정립하겠다는 의지다.

2005년 SF 공모전으로 등단해 2009년 674층짜리 거대 건물에 50만 명이 사는 도시국가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 ‘타워’로 문단에 충격을 던진 이래 국내 SF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그를 2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몇 년간 국내 SF의 폭발적 성장 배경을 물었다. 성장이 있어야 자신감과 의지가 생겨난다.

“원인은 많은데 정설이 뭔지는…. 다만 SF가 써도 되는 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등단했으면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암묵적으로 있는데 SF는 (이제) 해도 되는 거예요. 주류의 ‘사인’에 민감한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SF의 길이 열린 거죠.”

2020년 한국사회의 과학기술 수준도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분야의 선진기술을 체감하다 보면 SF에 더 가깝게 된다는 의미다. ‘타워’의 한 편인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는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중화되기 전인 2009년에 이미 그 도래와 사용법의 일단을 제시했다. 가까운 미래를 겨냥한 SF를 독자는 ‘지금 여기의 현실’로 읽었다. 반면 순문학 속 현실은 ‘오래된 현대’의 느낌이다.

미국 SF로부터의 자립도 쉽지는 않다. 일반 독자는 SF라고 하면 거대 구조물과 우주선을 떠올린다. “그런 건 60, 70년 전에 나온 거예요. 현대 SF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효과, 영향, 성찰을 다루죠. 인간에 대한 고찰, 문명에 대한 상상을 다루는 게 정상인데 사람들 머릿속 SF는 옛날 SF인 거죠.”

SF의 오랜 팬들은 좋은 한국 SF를 ‘수준이 미국만큼 올라왔네’ ‘미국 SF에서 봤던 거야’ 같은 식으로 찾는다. 이렇다면 ‘인류의 운명을 걸고 외계인과 담판에 나서는 미국 백인 주인공’이라는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 주인공 자리를 최근 중국 SF가 넘보고 있다. “중국은 국력이 커지고 국제정치의 중심에 서면서 SF도 올라왔어요. 한국 SF도 지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어요.”

그가 보기에 우리 문화 콘텐츠 속 세계 인식은 한국의 실제 위상에 비해 뒤처져 있다. 그가 생각하는 SF의 효과에는 “우리가 세상의 변화의 중심에 서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도 들어 있다.

데뷔 후 십 몇 년간 장편 5편에 소설집 6권을 냈지만 평단의 대접은 박하다. 비평은 쌓이지 않고 ‘배명훈 작가론’은 언감생심이다. 10년 전 주요 문예지로 ‘등단’도 했지만 여전히 “장르적인 것과 순문학적인 것의 중간에 있는 작가”라는 평가가 대세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쓰겠다”며 “잘 쓸 수 있는 것만이 아니고 안 써본 것도 쓰고 훈련을 하면서 영역을 더 넓혀 가겠다”고 말했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인물보다 세계에 집중하는 그에게 SF를 재미있게 읽는 법을 물었다. “SF가 현실의 무엇을 비유, 상징, 의미하는지 찾기보다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세요. 작품 속에 구축된 세계의 규칙을 따르는 등장인물에 이입하며 작품 안의 공기를 호흡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꾸 현실 세계의 공기가 유입되면 방해가 될 겁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배명훈#sf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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