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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전통에 이야기를 입히자… 잊혀가던 빵집이 다시 서울의 명소로

입력 2020-02-29 03:00업데이트 2020-02-2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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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最古 빵집 ‘태극당’을 뉴트로 성지로 부활시킨 신경철 전무
단골만 가끔 찾던 썰렁한 옛 빵집, 리모델링과 리뉴얼 통해 면모일신
작년 매출 2012년 대비 10배로
“식음료 법인 세우고 매장도 확대… 100년, 200년 가는 빵집 만들 것”
태극당 3세 경영인 신경철 전무가 할아버지 시절에 손글씨로 제작된 ‘太極(태극)식빵’ 안내판 앞에 섰다. 검정 비니와 금색 반지들, 피어싱까지 ‘힙합 마니아’ 신 전무의 차림새와 옛 안내판의 조합이 묘하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정겨운데 뭔가 낯설다.’

초등학생 때 이후 25년여 만에 찾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의 첫인상이다. ‘菓子中의 菓子’(과자 중의 과자)라고 적힌 간판 아래 입구에는 라인프렌즈의 캐릭터 ‘브라운’ 대형 피규어가 서 있었다. 매장 안은 근현대사 박물관 같았다. ‘納稅(납세)는 國力(국력)’처럼 1970년대식 구호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태극당이 운영하던 목장 풍경을 담은 조각 작품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었다. 빵 진열대와 의자에도 세월의 흔적이 살아있었다. 빵집인데 눈이 먼저 즐거웠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태극당을 ‘뉴트로(새로운 복고)의 성지’로 부활시킨 주인공 신경철 전무(35)와 신혜명 브랜드전략팀 부장(39)을 만났다. 둘은 창업주 고 신창근 대표의 손주들이다.

‘태극당집 손자’

태극당은 1946년 서울 명동에서 문을 열었다가 1973년 지금의 장충동으로 옮겼다. 태극당은 당대 최고(最高)의 빵집이었다. 매장 바닥에 대리석을 깔고 천정에는 대형 상들리에를 걸었다. 호텔만큼 화려한 인테리어에 유명인사들의 모임도 이곳에서 열렸다. 서울에만 직영점 7곳과 예식장까지 운영했다. 국내 최초로 금전등록기를 도입하고 제과학교를 설립했다. 태극당이 경기 남양주시에 설립한 목장 ‘농축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진 낙농기술을 보기 위해 직접 들렀다.

신경철 전무는 어린 시절에 대해 “다들 ‘태극당집 손자’라고 불렀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 덕분에 풍족하게 자랐다는 뜻이었다. 1976년 서울에서 가장 많은 재산세를 낸 인물이 할아버지였다.

태극당의 현재 모습(위 사진)과 건물 리모델링 이전 모습(아래 사진). 빵 진열 방식은 달라졌지만 태극당의 상징이던 샹들리에, 벽에 새겨진 대형 조각은 옛것 그대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신 전무가 입사한 건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버지(신광렬 대표)가 태극당을 이끌던 2012년이었다. 1990년대부터 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리면서 직영점과 예식장은 문을 닫았고 본점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태극당를 찾는 손님은 오랜 단골뿐이었다. 평일 카페 매출이 0원인 날도 있었다. 2013년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한 달 뒤 할아버지까지 별세하면서 신 전무는 입사 1년 만에 경영을 맡아야 했다. 입사 후 배운 건 계산이 전부였던 때였다. “언젠가 태극당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정말 막막했습니다.”

“지키기 위해서 바꿨다.”

태극당을 살리기 위해 큰누나인 신혜명 부장 등 가족들이 나섰다. 먼저 젊은 손님을 끌기 위해 마케팅을 벌였지만 낡은 건물이 발목을 잡았다. 전기 설비가 너무 오래돼 새 오븐을 들여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았고 4층 건물인데도 엘리베이터가 없어 지게로 빵을 날라야 했다.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태극당 브랜드 리뉴얼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통상 리뉴얼은 낡은 이미지를 덜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태극당은 옛것을 지키는 데 집중했다. “가족회의 끝에 내린 결론은 최고의 태극당은 가장 태극당스러울 때이며, 태극당은 가족뿐만 아니라 서울의 문화유산이니 우리가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는 점이었습니다.”(신 전무)

건물 리모델링은 ‘복원’에 가까웠다. ‘새것을 사는 게 더 싸다’는 인테리어 업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개업 당시 설치한 대형 샹들리에를 떼어 금속부분만 교체하고 다시 걸었다. 나무 안내판, 빵 진열장까지 모두 그대로 뒀다. 다만 손님이 진열장에서 빵을 고르면 직원이 꺼내주는 방식을 버리고 손님이 빵이 직접 골라 담도록 하는 등 시대 변화에 따라 꼭 필요한 부분은 바꿨다. 브랜드 리뉴얼은 신 부장이 주도했다. 미술 전공을 살려 제품마다 제각각이던 로고를 다듬고 통일했다. 태극당 서체를 만들고 홈페이지도 바꿨다. 할아버지 때 만든 ‘빵아저씨’ 캐릭터를 활용해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동화책도 냈다. 브랜드에 단골들만 아는 태극당 이야기를 입히는 과정이었다. “태극당에 대한 추억이 없는 젊은 세대도 공감하도록 만들려고 했습니다.”(신 부장)

‘뉴트로 성지’로 부활한 태극당

태극당과 라인프렌즈가 협업해 출시한 ‘브라운 모나카’.
태극당은 2015년 12월 다시 문을 열었다. 마침 복고 열풍이 불면서 ‘뉴트로 성지’로 입소문이 났다. 젊은 손님이 늘었고 패션 브랜드들이 협업을 제안했다. 힙합 의류브랜드 ‘브라운브레스’와 이탈리아 신발 브랜드 ‘슈페르가’는 태극당과 협업해 옷, 가방, 신발을 내놓았다. ‘폴로랄프로렌’은 한정판 의류 광고영상을 태극당에서 찍었다. 신 전무는 “우리 이야기를 입히는 데 집중했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뉴트로의 성지’가 됐다”고 말했다.

태극당은 2018년 서울 을지로점, 지난해 인사점을 열었다. 매출은 2012년에 비해 10배로 늘었다. 올해는 추가로 매장을 낼 계획이다. 신 부장은 “무엇보다 빵이 변함없이 맛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모나카, 단팥빵, 카스텔라 등 맛은 물론 모양, 포장지까지 옛것 그대로다. 1960~70년대 입사한 제과제빵 장인들이 여전히 태극당에서 빵을 만들고 있는 데다 경영난에도 기존 메뉴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 전무는 카스텔라 안에 사과잼을 넣은 ‘오란다빵’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빵이 크고 만들기도 까다로운 오란다빵은 2012년 입사 초기만 해도 인기가 없는 메뉴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매일 2, 3개씩 꾸준히 이 빵을 만들었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왜 계속 만드는지’ 여쭤봤더니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이것만 찾는 할머니 손님이 한 분이 계신다고요.” 오란다빵은 현재 태극당의 인기 메뉴 중 하나로 꼽힌다.

○ 백년 이상 가는 빵집으로

신 전무는 지난해 말 식음료 유통법인 ‘농축원’을 설립하고 농축원 카페와 레스토랑을 열었다. 다른 식음료 분야로 확장하는 동시에 태극당을 더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태극당은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운영하다 보니 세금 부담이 크고 사업 확장 등 경영상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향후 태극당도 법인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손주 놈이 태극당 말아먹었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엄청 노력했습니다. 앞으로 태극당이 100년, 200년은 버틸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데 집중할 겁니다. 세월이 흘러도 태극당에 오면 ‘우와’ 하는 탄성이 나오는 그런 빵집으로 남기는 게 목표입니다.”(신 전무)

오래된 빵집에서는 빵만 파는 게 아니었다. 단골들은 태극당에서 추억을 찾고 이곳이 처음인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태극당의 시그니처 메뉴인 카스텔라를 샀다. 25년 전 부모님이 사줬던 빵이었다. 다른 빵집 카스텔라보다 유독 크고 묵직했다. 빵 하나를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때 묵직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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