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은 신군부 아킬레스건”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8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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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록관 '기록물로 본 5·18과 김대중' 학술대회
"전두환, 내란 음모 5·18 엮어 국난국복 영웅 미화"
"5·18이후 시민 민주화운동 정치체계 규정하는 힘"
"내란 음모 구조적 후유증도, 지역 패권·갈등 초래"

5·18 민주화운동 전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권력 장악을 위해 다단계 군사 정변을 일으키고 정권 찬탈 희생양으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김 전 대통령 10주기를 앞두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신군부의 역사 왜곡·조작은 5공화국 몰락과 신군부 주요 세력이 내란죄로 유죄판결을 받는 계기가 됐고, 5·18 이후 전두환 정권에 저항한 민주화 열망이 우리나라 정치 체계를 규정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5·18기록관은 김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열흘 앞둔 8일 기록관에서 ‘기록물로 본 5·18과 김대중’이란 주제의 학술대회를 열었다.

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5·18 왜곡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김대중 재판기록(1980~1981년)을 중심으로 주제 발표를 하고, 신군부의 역사 왜곡 경위와 시민사회의 의로움을 재조명했다.

최 교수는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무력 진압과 정권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5·18 항쟁을 불순한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주장해야만 했다. 항쟁 발발 동시에 국가폭력과 항쟁을 왜곡·폄훼하는 조작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신군부가 반공 이데올로기의 효과(간첩 공작, 폭동 등)를 통해 5·18을 폄하하고 운동의 확상을 막으려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넘어간다. 김대중 내란 음모와 5·18을 하나로 엮어 자신들을 국난극복의 영웅으로 미화했다”는 뜻이다.

최 교수는 ▲김대중과 민주인사 내란 혐의 씌워 구속 ▲5·18 항쟁을 김대중 배후 조종과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난동으로 매도 ▲정치권·언론계·행정부 장악 따른 군부의 집권분위기 형성 ▲초헌법적 국가보위비상대책위 만들어 민중세력 항복시킴 ▲실권장악 뒤 유신헌법에 의해 대통령 추대 등을 다단계 군사 정변과 왜곡 경위의 큰 틀로 분석했다.

최 교수는 “특히 신군부 세력은 고문과 억지, 사법 절차를 통해 역사를 조작하려 했다. 사실심리, 증인심문, 재판과정 전반은 전두환이 국가권력을 강점하는 데 필요한 절차일 뿐이었다. 현실에서는 오히려 신군부가 내란죄(12·12 반란, 5·17 조치, 광주시민 학살 등)를 범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과 선제적 조치로 광주를 강경 진압한 것은 5공화국에게 ‘아킬레스건’이 됐다. 5·18 이후 시민사회의 저항과 ‘5월 진상규명’은 5공화국 몰락과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바꿨다. 연장선상에서 전두환 등은 내란죄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김대중은 2004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영재 한양대 학술연구교수는 5·18 왜곡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토론문을 통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구조적 후유증’을 주목했다.

이 교수는 “신군부는 5·18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엮어 일명 ‘빨갱이론’과 ‘북한 개입설’로 왜곡, 헌정질서 파괴 행위를 정당화했다. 이는 영남 중심의 패권적 지역주의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됐고, 그 후유증이 현재 정치구도까지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1980년을 기점으로 형성된 지역패권적 구도의 특징으로는 ▲반공·보수 이념 일변도를 강화해 지역·이념의 일체성 추구(본질적 갈등, 패권-소외지역, 진보-빨갱이 담론) ▲불법 집권으로 인한 민주적 정당성 상실을 무마하기 위해 기획된 점을 꼽았다.

김재형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미국 정부의 김대중 구하기 활동과 그 의미’라는 주제로 연구(김대중 재판 관련 미국자료 1979~1980년 한정)한 결과를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미국 정부의 김대중 재판에 대한 전략은 신군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김대중의 생명을 구하는 게 일차적 목표였다.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필요한 핵심 인물로 인식되고 있던 김대중을 살려둬 추후를 도모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김대중 재판과 관련 ▲신군부의 영향력 인정 ▲재판 과정·결과를 비난하는 공식 논평을 최대한 자제해 신군부를 자극하지 않음 ▲재판에 대한 우려는 비공식적으로 신군부 지도부에 전달 ▲절차상 문제점에 대한 증거 수집이란 전략을 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미 기밀 해제 문서가 1981년부터 확보되지 않아 추가 연구를 통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이밖에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5·18 기록물의 활용 방안과 과제 ▲일본 시민사회의 한국 민주화운동(김대중 구명 운동, 5·18 연대 등) 지원·연대 운동사와 의미 등을 논의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광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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