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슈베르트 3대 가곡집이 갖는 의미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9일 15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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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오른쪽)는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에게 “‘겨울 나그네’는 마냥 우울하지 않은 작품이며,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주인공들의 가식과 제스처가 드러나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오른쪽)는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에게 “‘겨울 나그네’는 마냥 우울하지 않은 작품이며,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주인공들의 가식과 제스처가 드러나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슈베르트 3대 가곡집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백조의 노래’ 완주. 영국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5)가 각각 10, 12,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피아니스트 줄리어스 드레이크와 함께 선보일 대작업이다. 영국인인 보스트리지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1925~2012)를 잇는 현존 최고의 독일 가곡 해석가로 불린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이며 그가 쓴 책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한국어를 포함해 세계 13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지난해 서울시립교향악단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돼 말러 가곡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노승림 씨(영국 워릭대 문화정책학 박사)와 함께 보스트리지를 만나 슈베르트 3대 가곡집이 갖는 의미와 작품 해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15년 만에 만나 반갑습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겨울 나그네는 단지 음울한 노래만으로 볼 수 없다’고 얘기하셨는데,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겨울 나그네’에는 기쁨과 우울, 분노, 불행, 행복의 기억들이 복합적으로 들어있습니다. 깊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환희를 떠올리는 등 극단적인 감정들이 엇갈리죠. 우울한 쪽에만 초점을 맞춰 두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노승림: 그와 비슷하게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나 ‘백조의 노래’에 대해서도 해석에 대해 놓치기 쉬운 부분은 없을까요.

“‘아름다운…’의 줄거리는 1820년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제스처놀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서로의 몸짓을 보고 그것이 나타내는 등장인물이나 말을 알아맞히는 놀이죠. 이 가곡집에서도 주인공들은 이와 같은 가식과 제스처를 펼쳐냅니다. 이에 따르면 물방앗간 아가씨는 순진하지 않은 주인공입니다. 더 깊이 파고들면 이 노래는 성적인 관심을 나타내며, 성장을 두려워하는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백조의 노래’ 같은 경우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슈베르트가 하나의 곡으로 작곡하지는 않았죠.

“‘백조의 노래’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7곡은 루트비히 렐슈타프의 시에 곡을 붙였고, 8~13곡은 하인리히 하이네, 마지막 곡은 자이들의 시에 곡을 붙였죠. 앞부분 일곱 곡은 틀림없이 베토벤의 유산을 물려받은 작품입니다. 베토벤이 이 시에 곡을 붙이려다 못하고 세상을 떠났죠. 아마 슈베르트가 베토벤의 제자 신들러를 통해 그 사실을 알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두 부분은 각각 개별적으로 작곡했지만, 사람들이 하나로 생각하도록 이 작품들을 묶어 출판한 출판인(토비아스 하즐링거)은 매우 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승림: 슈베르트는 본래 오페라 작곡가를 꿈꿨다고 하는데,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많은 작품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의 가곡집들을 자신이 못 쓴 오페라에 대한 대안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이 곡들을 오페라적인 발성으로 부르는 건 어떨까요?

“물론 이 가곡들은 드라마틱합니다. 무대를 설정할 수 있고, 그런 표현을 그릴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 본인이 그런 것을 의도했을 수도, 그런 해석을 유도하거나 그런 의도를 감췄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곡들이 ‘오페라와 다른 방식으로’ 극적이라고 봅니다. 본질적인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슈베르트가 남긴 오페라 아리아들을 들으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오페라와 리트 형식을 분명히 구분해서 작곡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그가 그처럼 훌륭한 오페라 아리아들을 작곡할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합니다.”

―당신은 이 곡들이 본디 테너를 위해 작곡된 작품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 생전에 이 곡들을 처음 초연한 미하엘 포클은 음역이 바리톤이었는데요.

“슈베르트가 출판한 악보는 테너 음역입니다. 지금 바리톤들이 부르려면 음역을 바꿔서 불러야 합니다. 슈베르트는 작곡할 때 실제로 바리톤 음역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 합니다. ‘겨울 나그네’ 같은 경우는 두세 곡이 높은 A(라) 음까지 올라가는 등 굉장히 높은 음이 자주 등장합니다. 포클이 초연할 때도 음역을 내려서 불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신의 책에 따르면 ‘겨울 나그네’를 슈베르트가 작곡할 때는 당시 메테르니히로 대표되는 유럽의 정치적 억압이 작품에 반영되었다고 했습니다. ‘물방앗간’에도 이런 정치적 상황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을까요.

“최소한 ‘겨울 나그네’처럼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정치적인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훨씬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작품입니다.”

―노승림: 당신의 첫 번째 음반 ‘물방앗간 아가씨’ 해석은 꽤 단순한 편이었습니다. 이후 해석이 바뀐 것이 흥미롭습니다.

“맞습니다. 나도 가끔씩 그 음반을 들어보곤 하는데 그렇게 들립니다. 연주를 반복해서 하면서 나의 생각이나 노래 방식이 바뀐 것도 있겠지만, 음반이란 것이 원래 청중들의 반응과 교감하면서 등장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발전시키는 공연과 달리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특징, 특히 아름다운 미학적 측면에 신경을 쓰면서 아주 극히 일부만을 보여주는 바람에 그 부분이 부각이 안 되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겨울 나그네’의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에서는 밥 딜런처럼 목소리를 긁는 창법 등 독창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책에 썼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독창적인 시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앞에도 음반과 실제 연주의 차이를 얘기했지만, 이 문제는 공연 당일의 청중과 내 기분, 그리고 분위기에 달린 것 같습니다.(웃음)”

―지금 쓰고 있는 책이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화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페라 극 속의 역할들에 대한 책을 쓰고 있고, 전쟁 및 인종과 성별 문제를 다루는 강의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영국은 모두가 브렉시트 걱정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인 오스틴이나 스탕달 등의 고전을 읽으면서 잊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가을에 본 공연이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의 봄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10일(겨울 나그네), 12일(아름다운…), 14일(백조의 노래) 오후 8시 열린다. 9만~12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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