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조정, 이순신 건의 수용하기도 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3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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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연구소 소장, 학술세미나에서 주장
조정도 수시로 공문 통해 행동지침 전달

“임진왜란 당시 조정은 왜적에 대처하기 위해 이순신의 건의를 수용하거나 능동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 탄신일(28일)을 앞두고 23일 열린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주최 제21회 이순신 학술세미나에서 제장명 이순신연구소 소장은 “오직 이순신의 판단과 능력에 의존해서만 수군이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을 담은 제 소장의 논문 ‘임진왜란 시기 조선의 수군정책과 이순신의 수군 운용’은 조정이 이순신 장군을 사사건건 훼방했다는 일반 인식과는 다소 차이가 난다.

논문에 따르면 1592년 전쟁이 발발하자 남쪽의 수군 지휘관들은 왜군을 맞아 싸우기 위해 활동을 전개했고 조정도 수시로 공문을 통해 행동지침을 전달했다. 이런 가운데 이순신의 주도로 왜란 초기 해전에서 4차례 전승을 거뒀다. 조정은 1593년 9월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의 간곡한 요청을 외면하지 않았다. 당시 이순신은 250척의 전력 증강 계획을 야심차게 추진했는데 흉년과 전염병으로 수군병력의 손실이 심각했다. 설상가상으로 조정은 육군의 강화를 위해 전라도 수군을 육군으로 징발하라고 지시하고 수군 소속 9개 고을을 육군에 편입시켰다. 당시 이순신은 이를 막아달라고 조정에 요청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논문은 조정이 이순신의 건의를 일부 수용한 것은 왜란 초기 해전 승리로 수군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596년 9월 명나라와 일본 간의 강화교섭이 결렬돼 일본이 전라도를 재침입할 것으로 예상되자 조정은 수군진을 통폐합하고 거북선을 많이 만들도록 했다. 수군 확충을 위해 공천(公賤) 사천(私賤)을 막론하고 본역(本役)을 면제해 수군에 전속시켰다. 제 소장은 “이순신의 치밀한 전략전술이 승전의 큰 이유였던 것은 틀림없다”며 “하지만 한 나라의 수군 운용이 현장 지휘관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순신의 해전과 그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한 임진왜란 수군사 연구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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